"토론:남해 죽전 비자나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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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토) 09:10 기준 최신판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비자나무는 비자나무과에 속하는 늘 푸른 큰키나무로 25m 내외로 자란다. 잎은 뾰족한 바늘처럼 생겼고 암수 딴그루로 꽃이 핀다. 이듬해 9~10월에는 길고 둥근 열매가 맺힌다. 열매는 맛이 떫으며, 구충제 등의 약재로 쓰이고 기름을 짜서 식용유나 등불을 밝히는 데 이용된다. 목재는 가구나 바둑판 등의 고급 공예품을 만드는데 이용된다.

이곳 비자나무는 높이 12m, 둘레 7m이며 나무의 나이는 약 600여년 정도로 남해군의 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1970년에 도로를 내면서 뿌리와 가지가 일부 잘렸다. 비자나무는 남해군을 상징하는 군목이다. 원래 남해는 삼자의 섬이라 하여 비자나무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몇 그루만 남아있다. 600여년 동안 이곳 마을을 지켜온 이 비자나무는 넉넉하게 가지를 펼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 그늘 아래에서 마을사람들은 여름철 농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일을 의논 하곤 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이다. 한국과 일본 등지의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 목재는 건축재, 가구재, 조각재 등으로 많이 쓰이고, 열매는 구충제와 변비 치료제 등으로 쓰인다.

이곳의 비자나무는 높이 12m, 둘레 7m이며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 이상 된 것으로 남해군의 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안길을 내면서 뿌리와 가지의 일부가 잘렸다.

600년 이상 이곳 마을을 지켜온 이 나무는 넉넉하게 가지를 펼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 그늘 아래에서 마을사람들은 여름철 농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일을 의논 하곤 하였다.

1차 수정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속하는 늘푸른 큰키나무이다. 한국과 일본 등지의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 목재는 가구나 바둑판 등 고급 공예품을 만들거나 건축자재로 많이 쓰이고, 열매는 구충제와 변비 치료제 등으로 쓰인다.

이곳의 비자나무는 나이가 600년 이상 되었으며, 남해군의 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그늘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은 여름철 농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일을 의논하곤 하였다.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으로 마을에 길을 내면서 뿌리와 가지의 일부가 잘렸다. 높이 12m, 둘레 7m이다.

자문의견

  1.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첫문장에 비자나무의 생물학적 특징을 적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 등지의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는 정보 보다는 개화 시기나 암수 딴그루라는 정보가 더 가치있어 보입니다. 예전에는 비자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불을 밝혔다는 기존 문안의 내용도 살리면 좋을 듯 합니다.
    • ‘높이 12m, 둘레 7m’라는 정보는 마지막 단락 두 번째 문장으로 옮기는게 적합해 보입니다. 나무의 규모를 이야기 한 다음 “그 그늘 아래에서 마을사람들은~”으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2차 수정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속하는 늘푸른 큰키나무이다. 잎은 뾰족한 바늘처럼 생겼고 4월에 암수 딴그루로 꽃이 피며 열매는 9~10월에 맺는다. 열매는 구충제와 변비 치료제 등으로 쓰이며, 예전에는 기름을 짜서 식용유나 등불을 밝히는 데 이용했다. 목재는 가구나 바둑판 등 고급 공예품을 만들거나 건축자재로 많이 쓰인다.

이곳의 비자나무는 나이가 600년 이상 되었다. 높이 12m, 둘레 7m로 남해군의 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은 여름철 농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일을 의논하곤 하였다.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으로 마을에 길을 내면서 뿌리와 가지의 일부가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