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남해금산영응기적비 대한중흥공덕축성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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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토) 09:32 기준 최신판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조선태조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던 중 산신의 영험에 의해 보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을 기념하며 1903년(광무7년) 5월 11일 세운 비석이다. 태조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곳에서 산신의 호응을 받아 등극할 수 있었고, 그 보은으로 보광산을 금산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다 한다. 의정부 찬정 윤정구가 글을 짓고 써서 세웠다. 높이 2m, 폭 60cm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비석은 남해 금산 삼불암(三佛巖) 아래의 비각 안에 있는 2기의 비로,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와 관련된 곳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산신의 호응을 받아 왕위에 등극할 수 있었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기존의 보광산(普光山)을 금산(錦山)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에 1903년 5월 11일에 의정부 찬정 윤정구(尹定求)가 비를 건립하였다.

2기의 비 가운데 왼쪽 비에는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鷹紀蹟碑)’, 오른쪽 비에는 ‘대한 중흥 공덕축성비(大韓中興公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1차 수정

이 2기의 비석은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와 관련된 곳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올랐다. 이후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의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이라 부르게 하였고, 이는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이다.

두 비석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윤정구(尹定求, 1841-?)가 1903년에 건립하였다. 왼쪽 비에는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오른쪽 비에는 ‘대한 중흥 공덕축성비(大韓中興公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각각 ‘남해 금산에 신령이 응답한 것을 기록한 비석’, ‘대한제국의 중흥과 공덕을 축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비각에는 선은전(璿恩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선은이란 ‘하늘의 은덕을 입었다’는 뜻이다.

자문의견

  1. 사적, 매장 위원1
    • 관련된 곳임을 → 구체적으로 서술(기도처)
    • ‘대한제국의 중흥과 송덕을 축원하는 비석’ →대한제국이라고 하면 1897년 대한제국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선 건국과 관련된 내용인가. 조선 건국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대한제국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을 듯함-검토 요망.
  2. 사적, 매장 위원2
    •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생몰년과 재위 기간 가운데 택일하여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 있음. / “윤정구(尹定求, 1841-?)” 앞의 태조 생몰년에 사용한 기호는 ‘~’인데, 여기서는 ‘-’를 사용함. 통일 필요.
    •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 대한중흥공덕축성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大韓中興頌德祝聖碑)” 한글과 병기된 한자가 맞지 않음. ‘공덕축성비’인데 병기된 한자는 ‘頌德祝聖碑(송덕축성비)’임. / 또 기술 내용에는 “오른쪽 비에는 ‘대한 중흥 공덕축성비(大韓中興公德祝聖碑)’”라고 하여 ‘公’을 사용하였음. 頌德의 오기임.
    •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오른쪽 비문 사진에는 ‘대한 중흥 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각각 ‘남해 금산에 신령이 응답한 것을 기록한 비석’, ‘대한제국의 중흥과 공덕을 축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 전설의 내용을 참고하면 남해 금산 영응 기적비는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라는 의미이고, 대한중흥송덕축성비는 “대한제국 중흥의 덕을 송축하고 국왕의 장수를 축원하는 비석” 정도의 의미임. 재고 필요함.

2차 수정

이 2기의 비석은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가 기도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올랐다. 이후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의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이라 부르게 하였는데, 이는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이다.

두 비석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윤정구(尹定求, 1841~?)가 1903년에 건립하였다. 왼쪽 비에는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오른쪽 비에는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각각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 ‘대한제국 중흥의 덕을 송축하고 황제의 장수를 축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비각에는 선은전(璿恩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선은이란 ‘하늘의 은덕을 입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