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금골산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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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진도를 한눈에 아우를 수 있는 금골산 정상 부근 동굴 안에 새겨진 높이 3.8m의 부처상이다. 가부좌로 앉아 있으며 양어깨에 옷이 걸쳐진 통견의 법의를 입었다. 둥근 얼굴에 눈이 작고 주먹코로 표현된 얼굴에서 고려시기 이후 토속화된 면을 볼 수 있다. 마애불의 가슴 부분에 패인 사각형 홈은 단순한 조각이 아닌 부처의 실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복장유물을 설치한 곳(복장감실)으로 여겨진다.

1498년 정언 벼슬을 한 이주가 무오사화로 이곳에 유배되어 쓴 「금골산록」에 당시 진도군수를 지낸 유호지가 시주하여 1469년부터 3년동안 만들어진 마애불로 기록되어 있다. 마애불 아래쪽인 현재 금성초등학교 자리에 해언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오층석탑만이 남아있다.

수정 국문

초고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은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금골산에 있는 석굴의 벽면에 새겨진 불상이다. ‘마애’는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금골산에는 수도처로 사용된 상굴, 서굴, 동굴 이렇게 세 개의 굴이 있는데, 이중 동굴에 새겨져 있다. 금골산 입구에는 고려 시대에 지어진 해원사(海院寺)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속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주의 「금골산록」에 의하면, 1469년(예종 1)부터 약 3년 동안 진도군수를 역임한 유호지가 발원하여 새겼다고 한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 왼손을 정좌한 다리 위로 올린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가운데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하였으나 미륵으로 인식되었다. 가슴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패인 홈이 있는데, 불상에 관련된 서적 등의 복장품을 넣었던 곳으로 보인다. 마애불의 생김새는 고려 시대의 불상에 비해 어깨가 좁고, 세속적인 인상을 지니고 있어 고려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문맥요소

요소 관계 설명
1 금골산(金骨山) 소재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산
2 해원사(海院寺) 소재지 금골산 자락에 있었던 고려 시대의 절
2 속동문선(續東文選) 관련 기록 1518년(중종 13) 신용개(申用漑)·김전(金詮)·남곤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시문집
3 이주(李胄) 기록자  ? ~ 1504. 조선 중기의 문신
4 유호지(柳好池) 시주자 생몰년 미상. 1469년 진도군수를 지낸 인물

1차 수정

금골산 석굴의 벽면에 새겨진 이 불상은 1469년부터 약 3년 동안 당시 진도 군수였던 유호지가 발원하여 만들어졌다.

결가부좌를 하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왼손은 다리 위로 올린 모습이 얕게 새겨져 있다. 둥근 얼굴에는 작은 눈과 주먹코가 표현되었고, 손은 비례에 맞지 않게 작은 편이며, 양쪽 어깨를 덮은 법의를 입었다. 가슴에는 사각형의 홈이 패여 있는데, 이는 불상 안에 사리와 불경 등 종교적인 상징물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을 나타낸다.

금골산 아래에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오층석탑(보물 제529호)만 남아있다.

자문의견

  1. 불교문화재 위원1
    • 직접 수정
  2. 불교문화재 위원2
    • 정확한 정보와 근거를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기존 문안의 “1498년 정언 벼슬을 한 이주가 무오사화로 이곳에 유배되어 쓴 「금골산록」에 당시 진도군수를 지낸 유호지가 시주하여 1469년부터 3년 동안 만들어진 마애불로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포함시키는 게 좋겠음. 현재 수정 문안은 지나치게 단정적임. (........유호지가 발원하여 만들어졌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금골산 석굴의 벽면에 새겨진 이 불상은 1469년부터 약 3년 동안 당시 진도 군수였던 유호지가 발원하여 만들어졌다. → 금골산 석굴의 벽면에 새겨진 높이 3.8m의 거대한 이 불상은 1469년부터 약 3년 동안 당시 진도 군수였던 유호지가 시주하여 만들어졌다.

2차 수정

금골산 석굴의 벽면에 새겨진 높이 3.8m의 거대한 이 불상은 1469년부터 약 3년 동안 당시 진도 군수였던 유호지가 시주하여 만들어졌다.

결가부좌를 하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왼손은 다리 위로 올린 자세로 얕게 새겨져 있다. 둥근 얼굴에는 작은 눈과 주먹코가 표현되었고, 손은 비례에 맞지 않게 작은 편이며, 양쪽 어깨를 덮은 법의를 입었다. 가슴에는 사각형의 홈이 패여 있는데, 이는 불상 안에 사리와 불경 등 종교적인 상징물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을 나타낸다.

금골산 아래에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오층석탑(보물 제529호)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