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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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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Stele of State Preceptor Daeji at Eokjeongsa Temple Site, Chungju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영문명칭 Stele of State Preceptor Daeji at Eokjeongsa Temple Site, Chungju
한자 忠州 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
주소 충북 충주시 엄정면 비석2길 35-21 (괴동리)
지정번호 보물 제16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려 말에 활동한 대지국사(大智國師, 1328∼1390)의 생애를 담은 비이다. 비는 매우 간단한 형태로 4각형의 비좌(碑座)에 귀접이를 한 비석을 끼웠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말 조선초에 유행했다.

대지국사는 양주한씨(楊州韓氏)로 법명은 찬영(粲英), 자(字)는 고저(古樗), 호(號)는 목암(木菴)이다. 1341년(충혜왕 2) 출가하여 태고화상(太古和尙) 보우(普愚)를 은사로 계(戒)를 받았으며 1353년(공민왕 2) 승과에 장원급제 하였다. 이후 석남사, 운문사 등 여러 사찰의 주지를 맡았으며 1383년(우왕 9) 왕사(王師)가 되어 원응존자(圓應尊者)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후 억정사 주지를 지내다 1390년(공양왕 2) 6월 63세로 입적하였다.

고려 공양왕 때 내린 시호는 지감국사(智鑑國師), 탑호(塔號)는 혜월원명(慧月圓明)이었다. 그런데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조선 태조(이성계)가 시호는 대지국사(大智國師)로, 탑호는 지감원명(智鑑圓明)으로 바꿨다.

이 비는 1393년(태조 2)에 대선사(大禪師) 중윤(中允)이 세웠으며 박의중(朴宜中)이 비문을 짓고, 선진(旋軫)이 글을 쓰고 혜공(惠公)이 글자를 새겼다.


* 대지국사를 화장한 후 유골을 봉안한 승탑(僧塔)은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충주박물관(중앙탑면 탑평리) 앞에 전시한 신만리 부도재가 대지국사와 관련된 승탑일 가능성이 있다.

영문

Stele of State Preceptor Daeji at Eokjeongsa Temple Site, Chungju

This stele was erected in 1393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Chanyeong (1328-1390), also known as State Preceptor Daeji,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Chanyeong was born in Yangju, Gyeonggi-do Province, he was ordained and became a Buddhist monk in 1341. After he was the first on the state examination in 1353, he served in various temples as a chief monk (주지 - an abbot? I saw in previous texts ). In 1383, he was promoted to a royal preceptor and served as a chief monk in Eokjeongsa Temple till his death in 1390. King Gongyang (r. 1389-1392) bestowed him posthumously the title of Jigamguksa, meaning “the mirror of wisdom”, and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King Taejo (r. 1392-1398) bestowed upon him another title Daejiguksa, meaning “grand wisdom”.

The stele was erected by his disciple Jungyun with the title which was bestowed by King Taejo. The stel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Bak Uijung, calligraphed by monk Seonjin, and was engraved by monk Hyegong. The front side is inscribed with information about the life of state receptor Daeji, and the back side is bearing the names of his disciples.

This granite stele consists of a rectangular base stone and a body stone, without a capstone or a decorative top, but, instead, the left and right corners of the top of the body stone were cut off. This form of a stele was widely spread in early Joseon period (1392-1910).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승려인 대지국사 찬영(1328-1390)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393년에 세운 탑비이다.

찬영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341년에 출가하여 계를 받았다. 1353년에 승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여러 사찰의 주지를 맡았으며, 1383년 우왕(재위 1374-1388)이 왕사로 봉한 후에는 억정사 주지가 되었다. 사후 공양왕(재위 1389-1392)이 '지혜의 거울'이라는 뜻의 지감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조선 건국 후인 1393년 태조(재위 1392-1398)가 다시 '큰 지혜'라는 뜻의 대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탑비는 태조의 명으로 대지국사의 제자인 중윤이 세웠다. 비문은 문신 박의중(1337-1403)이 지었고, 승려 선진이 글씨를 썼으며, 승려 혜공이 새겼다. 앞면에는 대지국사의 일생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그를 따랐던 문도들의 이름을 새겼다.

사각형 받침돌 위에 몸돌을 올린 형태로, 머릿돌이나 장식은 없고 몸돌 상단의 좌우 모서리를 깎아냈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유행한 양식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