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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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충주미륵리석조여래입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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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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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 사적 제317호) 석굴 내에 본존불로 봉안된 부처이다. 높이가 10.6m에 이르는 큰 불상으로 석굴은‘⊓’형이며 석굴 벽면에는 부조상들이 일부 남아 있다. 이로 볼 때 경주 석굴암과 같이 조각상이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화재로 인해 원형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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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 사적 제317호) 석굴 내에 본존불로 봉안된 부처이다. 높이가 10.6m에 이르는 큰 불상으로 석굴은 ‘⊓’형이며 석굴 벽면에는 부조상들이 일부 남아 있다. 이로 볼 때 경주 석굴암과 같이 조각상이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화재로 인해 원형을 잃었다.  
  
 
여래상의 얼굴과 손은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으나 나머지 신체부위는 간략하게 조각하여 돌기둥을 보는 듯하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입체적인 편인데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와 연결된다. 머리는 나발*이며 팔각형의 보개*를 쓰고 있다. 보개 모서리에는 풍령(風鈴)을 고정하기 위한 철심이 몇 개 박혀 있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왼손에는 보주(寶珠)로 보이는 원형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하반신은 거의 돌기둥처럼 보이며 발은 반쯤 표현되었고 대좌는 복련좌*이다. 보개에서 대좌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돌은 총 6매이다.
 
여래상의 얼굴과 손은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으나 나머지 신체부위는 간략하게 조각하여 돌기둥을 보는 듯하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입체적인 편인데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와 연결된다. 머리는 나발*이며 팔각형의 보개*를 쓰고 있다. 보개 모서리에는 풍령(風鈴)을 고정하기 위한 철심이 몇 개 박혀 있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왼손에는 보주(寶珠)로 보이는 원형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하반신은 거의 돌기둥처럼 보이며 발은 반쯤 표현되었고 대좌는 복련좌*이다. 보개에서 대좌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돌은 총 6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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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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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Standing Buddha in Mireuk-ri, Chu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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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one statue situated at the center of Mireukdaewon Stone Temple Site (Historic Site No. 317) depicts a standing buddha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around the 10th century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It measures 10.6 m in height.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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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ue consists of six stacked granite stones to create the pedestal, body, and octagonal hat of the statue. The lower body is roughly carved like a pillar in comparison to the delicately carved face and hands. This is a characteristic of large Buddhist statues of the early Goryeo period.
이 불상은 '''고려 전기에 / 10세기 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사원으로 추정되는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의 중심 영역에 북쪽을 향해 세워져 있으며, 불상이 서있는 '''대좌를 제외하고 총 5매의 화강암을 이용해 조성되었다. / 대좌를 포함해 총 6매의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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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ddha has curly hair, eyes that seem to be closed, and eyebrows that are depicted as a semi-circular line that connects to the nose. The jewel-like spot carved between his eyebrows is a tuft of white hair which symbolizes his mercy shining out to the world. Both hands are raised to his chest, and in his left hand, he holds a round object that is presumed to be a wish-fulfilling jewel.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 위에 팔각형의 보개를 올렸다. 이마의 구슬 모양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으로,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목에는 수행의 단계를 상징하는 삼도가 뚜렷하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위에 있는 오른손은 손등이 바깥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 원형의 지물을 감싸 안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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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ea where this statue is located has been excavated five times since 1977. Many shards of pottery and roof tiles inscribed with the name “Mireuk” were discovered, suggesting that this was a temple honoring Maitreya, the Future Buddha (known as Mireukbul in Korean). However, since it is uncommon for Maitreya to be depicted holding a wish-fulfilling jewel, so it is uncertain whether this statue is a Maitreya Buddha.
  
섬세하게 표현된 얼굴과 손에 비해 하체는 기둥과 같이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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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statue and to each side, there are stone platforms on top of which a wooden structure once stood which is presumed to have been a grotto-like worship hall. Some relief sculptures still remain on the stone platforms, but the wooden structure was burnt down.
  
불상이 자리한 미륵대원지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석굴사원이 있었던 곳으로, 이곳에 있었던 사찰은 미륵불을 모시며 원()을 겸하던 대규모 가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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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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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 중심 영역에 위치한 이 불상은 고려시대인 10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10.6m이다.  
  
1977년부터 1991년 사이에 5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대원사’라는 사찰명을 비롯해 ‘미륵’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조각들이 다수 출토되었고 1192년(명종 22)에 중수되었던 사실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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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대좌부터 머리 위의 팔각형 보개까지 총 6매의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섬세하게 표현된 얼굴과 손에 비해 하체는 기둥과 같이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거대 불상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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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고,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와 연결된다. 이마의 구슬 모양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으로,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왼손에는 보주로 추정되는 원형의 지물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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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원지에서는 1977년부터 5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미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이곳이 미륵불을 모시는 사찰이었다고 여겨지지만, 보주를 들고 있는 미륵불상은 드물기 때문에 이 불상이 미륵불을 나타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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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양옆과 뒤쪽에 석축이 둘러져 있는데, 원래 이 석축 위에 목조 건물을 올려 석굴식 법당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축에는 부조상들이 일부 남아 있으나, 목조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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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디지털충주문화대전  http://chu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ungju&dataType=01&contents_id=GC01901987  -> 석실 관련 설명 (참고)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을 둘러싸고 있는 석실은 웅장한 규모로 사각형의 주실(主室)은 9.8×10.75m이며, 석축의 높이는 6m로 큰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아 올렸다. 석축 위에는 목조 건물이 있었으나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실(前室)은 목조로 축조되었던 석굴과 목조건축의 복합양식을 보여준다. / 석굴암을 모방한 듯하나 규모가 웅장하고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발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석불은 머리 위에 팔각의 보개를 쓰고 있으며 거대한 화강암으로 조성하였으나 얼굴 표현에서 온화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 1977년부터 5차에 걸쳐 발굴을 실시하였는데, ‘명창3년 금당개개와…(明昌三年 金堂改盖瓦…)’, ‘미륵(彌勒)’, ‘미륵당(彌勒堂)’, ‘미륵당사(彌勒堂寺)’, ‘원주(院主)’라는 명문기와가 나왔다. 이를 통해 이곳이 미륵불을 모시는 사찰이며 원(院)을 겸하고 있는 사찰이라는 점, 1192년(명종 22)에 중수하였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현재 불상이 위치한 석굴사원 앞쪽에는 석등을 비롯하여 오층석탑, 귀부,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 석조물들이 남아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디지털충주문화대전  http://chu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ungju&dataType=01&contents_id=GC01901987  -> 석실 관련 설명 (참고)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을 둘러싸고 있는 석실은 웅장한 규모로 사각형의 주실(主室)은 9.8×10.75m이며, 석축의 높이는 6m로 큰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아 올렸다. 석축 위에는 목조 건물이 있었으나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실(前室)은 목조로 축조되었던 석굴과 목조건축의 복합양식을 보여준다. / 석굴암을 모방한 듯하나 규모가 웅장하고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발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석불은 머리 위에 팔각의 보개를 쓰고 있으며 거대한 화강암으로 조성하였으나 얼굴 표현에서 온화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 1977년부터 5차에 걸쳐 발굴을 실시하였는데, ‘명창3년 금당개개와…(明昌三年 金堂改盖瓦…)’, ‘미륵(彌勒)’, ‘미륵당(彌勒堂)’, ‘미륵당사(彌勒堂寺)’, ‘원주(院主)’라는 명문기와가 나왔다. 이를 통해 이곳이 미륵불을 모시는 사찰이며 원(院)을 겸하고 있는 사찰이라는 점, 1192년(명종 22)에 중수하였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현재 불상이 위치한 석굴사원 앞쪽에는 석등을 비롯하여 오층석탑, 귀부,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 석조물들이 남아있다.
 
*2018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 불상은 10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이 조각된 대좌 부분과 몸체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점에서 고려시대 전란 등으로 불상이 손상되어 다시 조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발굴조사에서 “彌勒堂”명 와편이 출토되면서 미륵불로 신앙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 오른손은 팔꿈치에서 앞으로 내밀고, 손가락을 세워 안쪽으로 구부려 손등이 바깥쪽을 향하게 하고 있다. 왼손은 몸에 밀착하고 손바닥을 위로 하였고, 손에는 원형 지물을 쥐고 있다.  
 
*2018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 불상은 10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이 조각된 대좌 부분과 몸체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점에서 고려시대 전란 등으로 불상이 손상되어 다시 조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발굴조사에서 “彌勒堂”명 와편이 출토되면서 미륵불로 신앙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 오른손은 팔꿈치에서 앞으로 내밀고, 손가락을 세워 안쪽으로 구부려 손등이 바깥쪽을 향하게 하고 있다. 왼손은 몸에 밀착하고 손바닥을 위로 하였고, 손에는 원형 지물을 쥐고 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한국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3300960000  -> 전설 관련 문구 ;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에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한국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3300960000  -> 전설 관련 문구 ;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에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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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일 (목) 16:27 기준 최신판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Stone Standing Buddha in Mireuk-ri, Chungju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영문명칭 Stone Standing Buddha in Mireuk-ri, Chungju
한자 忠州 彌勒里 石造如來立像
주소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8번지
지정번호 보물 제96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충주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 사적 제317호) 석굴 내에 본존불로 봉안된 부처이다. 높이가 10.6m에 이르는 큰 불상으로 석굴은 ‘⊓’형이며 석굴 벽면에는 부조상들이 일부 남아 있다. 이로 볼 때 경주 석굴암과 같이 조각상이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화재로 인해 원형을 잃었다.

여래상의 얼굴과 손은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으나 나머지 신체부위는 간략하게 조각하여 돌기둥을 보는 듯하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입체적인 편인데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와 연결된다. 머리는 나발*이며 팔각형의 보개*를 쓰고 있다. 보개 모서리에는 풍령(風鈴)을 고정하기 위한 철심이 몇 개 박혀 있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왼손에는 보주(寶珠)로 보이는 원형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하반신은 거의 돌기둥처럼 보이며 발은 반쯤 표현되었고 대좌는 복련좌*이다. 보개에서 대좌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돌은 총 6매이다.

절터 발굴 시 출토된 기와 중에‘彌勒(미륵)’이 다수 찍혀 있는 것으로 볼 때 부처의 명칭은 미륵으로 생각되나 왼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미륵상은 예가 없어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석불은 10m가 넘는 불상이지만 얼굴이나 손부분만 강조하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표현하는 등 고려전기 거대불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보여준다.


  • 나발(螺髮) :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형상을 한 부처의 머리털
  • 보개(寶蓋) : 머리 위에 덮개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
  • 복련좌(覆蓮座) :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무늬를 새긴 대좌

영문

Stone Standing Buddha in Mireuk-ri, Chungju

This stone statue situated at the center of Mireukdaewon Stone Temple Site (Historic Site No. 317) depicts a standing buddha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around the 10th century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It measures 10.6 m in height.

The statue consists of six stacked granite stones to create the pedestal, body, and octagonal hat of the statue. The lower body is roughly carved like a pillar in comparison to the delicately carved face and hands. This is a characteristic of large Buddhist statues of the early Goryeo period.

The buddha has curly hair, eyes that seem to be closed, and eyebrows that are depicted as a semi-circular line that connects to the nose. The jewel-like spot carved between his eyebrows is a tuft of white hair which symbolizes his mercy shining out to the world. Both hands are raised to his chest, and in his left hand, he holds a round object that is presumed to be a wish-fulfilling jewel.

The area where this statue is located has been excavated five times since 1977. Many shards of pottery and roof tiles inscribed with the name “Mireuk” were discovered, suggesting that this was a temple honoring Maitreya, the Future Buddha (known as Mireukbul in Korean). However, since it is uncommon for Maitreya to be depicted holding a wish-fulfilling jewel, so it is uncertain whether this statue is a Maitreya Buddha.

Behind the statue and to each side, there are stone platforms on top of which a wooden structure once stood which is presumed to have been a grotto-like worship hall. Some relief sculptures still remain on the stone platforms, but the wooden structure was burnt down.

영문 해설 내용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 중심 영역에 위치한 이 불상은 고려시대인 10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10.6m이다.

불상은 대좌부터 머리 위의 팔각형 보개까지 총 6매의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섬세하게 표현된 얼굴과 손에 비해 하체는 기둥과 같이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거대 불상의 특징이다.

머리는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고,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와 연결된다. 이마의 구슬 모양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으로,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왼손에는 보주로 추정되는 원형의 지물을 들고 있다.

미륵대원지에서는 1977년부터 5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미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이곳이 미륵불을 모시는 사찰이었다고 여겨지지만, 보주를 들고 있는 미륵불상은 드물기 때문에 이 불상이 미륵불을 나타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불상의 양옆과 뒤쪽에 석축이 둘러져 있는데, 원래 이 석축 위에 목조 건물을 올려 석굴식 법당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축에는 부조상들이 일부 남아 있으나, 목조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참고자료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디지털충주문화대전 http://chu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ungju&dataType=01&contents_id=GC01901987 -> 석실 관련 설명 (참고)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을 둘러싸고 있는 석실은 웅장한 규모로 사각형의 주실(主室)은 9.8×10.75m이며, 석축의 높이는 6m로 큰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아 올렸다. 석축 위에는 목조 건물이 있었으나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실(前室)은 목조로 축조되었던 석굴과 목조건축의 복합양식을 보여준다. / 석굴암을 모방한 듯하나 규모가 웅장하고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발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석불은 머리 위에 팔각의 보개를 쓰고 있으며 거대한 화강암으로 조성하였으나 얼굴 표현에서 온화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 1977년부터 5차에 걸쳐 발굴을 실시하였는데, ‘명창3년 금당개개와…(明昌三年 金堂改盖瓦…)’, ‘미륵(彌勒)’, ‘미륵당(彌勒堂)’, ‘미륵당사(彌勒堂寺)’, ‘원주(院主)’라는 명문기와가 나왔다. 이를 통해 이곳이 미륵불을 모시는 사찰이며 원(院)을 겸하고 있는 사찰이라는 점, 1192년(명종 22)에 중수하였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현재 불상이 위치한 석굴사원 앞쪽에는 석등을 비롯하여 오층석탑, 귀부,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 석조물들이 남아있다.
  • 2018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 불상은 10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이 조각된 대좌 부분과 몸체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점에서 고려시대 전란 등으로 불상이 손상되어 다시 조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발굴조사에서 “彌勒堂”명 와편이 출토되면서 미륵불로 신앙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 오른손은 팔꿈치에서 앞으로 내밀고, 손가락을 세워 안쪽으로 구부려 손등이 바깥쪽을 향하게 하고 있다. 왼손은 몸에 밀착하고 손바닥을 위로 하였고, 손에는 원형 지물을 쥐고 있다.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한국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3300960000 -> 전설 관련 문구 ;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에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