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최여겸(마티아) 순교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최여겸(마티아)순교지.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0390000 최여겸(마...)
 
(영문)
(다른 사용자 한 명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2번째 줄: 2번째 줄:
 
{{문화유산정보
 
{{문화유산정보
 
|사진=최여겸(마티아)순교지.jpg
 
|사진=최여겸(마티아)순교지.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0390000 최여겸(마티아)순교지], 굿뉴스, 천주교구
+
|사진출처=[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holyplace&ctxtOrgCode=71&Orggubun=71&ctxtOrgNum=4199 최여겸(마티아)순교지], 굿뉴스, 천주교구
 
|대표명칭=최여겸(마티아) 순교지
 
|대표명칭=최여겸(마티아) 순교지
 
|영문명칭=
 
|영문명칭=
34번째 줄: 34번째 줄:
 
===영문===
 
===영문===
  
 +
This is the place where Choe Yeo-gyeom (1763-1801), the first Catholic martyr of Gochang area, suffered martyrdom by beheading.
  
===영문 해설 내용===
+
Choe Yeo-gyeom was born in an upper-class family of Gochang and learned Christian theology from Paul Yun Ji-Chung (1759-1791), the first Catholic martyr of Korea. After marriage, he went to his in-laws’ home in Hansan, Chungcheong-do Province where he met Yi Jonchang Ludovico. After this meeting, he became a devout believer, he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was responsible for the conversion of 28 persons. During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801, he fled to his in-laws’ home but he was arrested and transferred to Hanyang where he was tortured. Regardless of the torture, he stood fast in his faith till the end. He was sentenced to death and was sent to his hometown where he suffered martyrdom here, the most bustling marketplace in Gochang at that time. In 2014, he was beautified by Pope Francis along with other 123 martyrs becoming a Blessed.
이곳은 고창 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최여겸(1763-1801)의 처형지이다.
 
  
무장 지역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최여겸은 전라도 진산(지금은 충청남도 금산군) 땅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웠다. 결혼 후에는 처가가 있는 충청도 한산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되었으며, 이후 고향 무장으로 돌아와 28명을 전도하였다.
+
The Catholic Diocese of Jeonju and Gochang-gun starting sanctifying this place since 2002 and in 2013 a dedication mass was held here to honor this sacred place of martyrdom.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처가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었고, 무장과 전주, 한양까지 압송되어 고문을 받았지만 신앙을 꺾지 않아 고향인 무장에서 가장 번화했던 개갑 장터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
===영문 해설 내용===
 +
이곳은 고창 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최여겸(1763-1801)이 참수형을 당해 순교한 곳이다.
  
최여겸은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어 복자품으로 추대되었다.
+
고창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최여겸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1759-1791)에게서 교리를 배웠다. 결혼 후에는 처가가 있는 충청도 한산에서 이존창 루도비코를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되었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28명을 전도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처가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었고, 한양으로 이송되어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사형을 선고받은 후 고향으로 보내져, 당시 고창에서 가장 번화한 장터가 있던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최여겸은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어 복자품으로 추대되었다.
  
전주교구와 고창군은 2002년부터 이곳을 가톨릭 성지로 성역화하는 작업을 시작해 2013년에 이곳에서 순교성지 축복 미사를 드렸다. 지금은 순교 현양탑과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상징물들은 최여겸의 활동을 담은 모자이크 색유리화로 장식되어 있다.
+
전주교구와 고창군은 2002년부터 이곳을 가톨릭 성지로 성역화하기 시작하였고, 2013년 이곳에서 순교성지 축복 미사를 드렸다.  
  
=='''참고 자료'''==
+
=='''참고자료'''==
 
*천주교구 굿뉴스 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holyplace&ctxtOrgCode=71&Orggubun=71&ctxtOrgNum=4199  -> 개갑 장터는 전라도 선교의 거점이자 천주교 순교의 하한선이라는 종교사적 의미가 있지만,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다. (사진 출처)
 
*천주교구 굿뉴스 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holyplace&ctxtOrgCode=71&Orggubun=71&ctxtOrgNum=4199  -> 개갑 장터는 전라도 선교의 거점이자 천주교 순교의 하한선이라는 종교사적 의미가 있지만,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다. (사진 출처)
  

2020년 9월 12일 (토) 18:59 판


최여겸(마티아) 순교지
최여겸(마티아)순교지, 굿뉴스, 천주교구
대표명칭 최여겸(마티아) 순교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167
지정번호 향토문화유산 제1호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



해설문

국문

최여겸은 1763년 전라도 무장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이다. 그는 전라도 진산(지금은 충청남도 금산군) 땅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웠다.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간 뒤에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면서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고향인 무장으로 돌아온 그는 전라도 서남 해안에서 눈부시게 활동하여 28명을 전도하였다.

최여겸은 신유박해 당시인 1801년 음력 4월 13일에 충청도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현으로 압송되었다. 다시 전주 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이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중죄인은 고향에서 처벌하여 본보기로 삼는 ‘해읍정법’에 따라 1801년 음력 7월 19일에 무장의 개갑 장터*에서 참수를 당하였다. 개갑 장터는 고창 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이며, 전라도 선교의 거점이자 천주교 순교의 하한선이라는 종교사적 의미를 갖는다.

최여겸은 2014년에 순교자 윤지충과 더불어 123위에 포함돼 시복시성*이 되었다.


  • 개갑 장터: 최여겸〔마티아〕이 천주교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했던 곳으로, 규모가 큰 우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김질이라는 선비가 추운 겨울의 눈길을 헤치며 제물을 구하러 가는 모습에 감동한 무장 현감이 그를 위해 장을 여니 바로 ‘개갑장’이다.
  • 시복시성: 가톨릭에서 타계한 교인 가운데 덕행이 뛰어난 이를 복자품이나 성인품으로 추대하는 일

영문

This is the place where Choe Yeo-gyeom (1763-1801), the first Catholic martyr of Gochang area, suffered martyrdom by beheading.

Choe Yeo-gyeom was born in an upper-class family of Gochang and learned Christian theology from Paul Yun Ji-Chung (1759-1791), the first Catholic martyr of Korea. After marriage, he went to his in-laws’ home in Hansan, Chungcheong-do Province where he met Yi Jonchang Ludovico. After this meeting, he became a devout believer, he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was responsible for the conversion of 28 persons. During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801, he fled to his in-laws’ home but he was arrested and transferred to Hanyang where he was tortured. Regardless of the torture, he stood fast in his faith till the end. He was sentenced to death and was sent to his hometown where he suffered martyrdom here, the most bustling marketplace in Gochang at that time. In 2014, he was beautified by Pope Francis along with other 123 martyrs becoming a Blessed.

The Catholic Diocese of Jeonju and Gochang-gun starting sanctifying this place since 2002 and in 2013 a dedication mass was held here to honor this sacred place of martyrdom.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창 지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최여겸(1763-1801)이 참수형을 당해 순교한 곳이다.

고창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최여겸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1759-1791)에게서 교리를 배웠다. 결혼 후에는 처가가 있는 충청도 한산에서 이존창 루도비코를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되었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28명을 전도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처가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었고, 한양으로 이송되어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사형을 선고받은 후 고향으로 보내져, 당시 고창에서 가장 번화한 장터가 있던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최여겸은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어 복자품으로 추대되었다.

전주교구와 고창군은 2002년부터 이곳을 가톨릭 성지로 성역화하기 시작하였고, 2013년 이곳에서 순교성지 축복 미사를 드렸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