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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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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당(178-1)
체화당(178-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체화당(178-1)
한자 棣華堂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가천2길 52 (청리면, 체화당)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
지정일 1986년 12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체화당(178-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체화당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월간 이전(1558∼1648)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인조 10년(1632)에 이전의 셋째 아들 신규가 세웠다. 집 이름인 체화는 형제의 우애를 뜻하는 말로 이전과 동생인 창석 이준의 우애를 상징하는 말이다. 서산의 동쪽 산자락 끝에 관리사, 체화당, 월간사당이 동쪽을 향하게 지어졌고, 외곽에 흙돌담을 쌓았다. 사당은 다른 곳에 세워진 것을 영조 47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며, 흙돌담으로 경계를 짓고 따로 출입문을 두었다.

체화당은 ‘ㅅ’자 모양 지붕에 기와를 이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대칭으로 배열하고, 방과 대청 앞으로 툇마루를 놓았다. 창과 문은 각각의 기능에 맞춰 고급 기술로 만들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은 앞면이 3칸, 옆면이 1.5칸이고, 체화당과 비슷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지붕 뼈대는 체화당과 같지만 화려한 무늬인 단청이 있다. 대문과 부속실이 있는 대문채는 앞면이 6칸, 옆면이 1칸이다. 대문 오른쪽으로 마루, 방, 부엌이 있고 왼쪽으로 방 2칸이 일렬로 구성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체화당은 이전(1558-1648, 호 월간)이 후학 양성을 위해 사용했던 곳이다. 이전의 셋째 아들 이신규가 1632년에 지었다.

이전은 상주 출신으로 조선 후기 문신 류성룡의 제자였다. 임진왜란 때 동생 이준(1560-1635)과 함께 의병을 모아 싸우기도 했으며, 전쟁 후 잠시 관직에 나갔다가 1624년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곳은 체화당과 대문채, 월간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화당 건물은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체화당 뒤편에는 담을 둘러 경계를 나누고 사당을 두었다. 1656년 다른 곳에 세워졌던 것을 1771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며, 안에 이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집의 이름인 ‘체화’는 이전과 그의 동생 이준의 우애를 뜻한다.

임진왜란 중 왜적이 갑자기 쳐들어왔는데 동생 이준(1560-1635)이 급병이 나서 도망갈 수 없게 되자, 동생을 업고 왜적과 싸우며 백화산 정상까지 올라 둘 다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형제급난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7호)는 이준이 1604년 사신단의 서장관 자격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중국인 화공이 그린 것이다.

  • 사당 건물이 원래 있었던 곳은 찾을 수 없음.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