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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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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서당
청천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천서당
한자 晴川書堂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66-7 (칠봉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1호
지정일 1991년 5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청천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당과 서원은 조선시대의 사립학교로, 서당은 초등 교육을 맡았으며 서원에서는 고등교육이 이루어졌다.

청천서당은 동강 김우옹을 모시는 청천서원이 조선 고종 때(1868) 서원훼철령으로 헐린 이후 김창숙의 아버지인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서원을 대신할 교육기관인 서당으로 활용하면서 붙인 명칭이다.

청천서원은 동강 김우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 5년(1729)에 처음 세워졌고, 회연서원과 함께 성주를 대표하는 서원이었다. 조선 고종 때 철폐된 이후 1992년 옛 서원 자리에 복원하였다.

김창숙은 1910년 청천서당을 성명학교라 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위한 학교로 활용하기도 하였고, 일제강점기에 한동안 거주하기도 했다. 이후 청천서당은 1991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청천서당은 강당과 대문채, 관리사로 이루어져 있다.


  • 김우옹(金宇顒, 1540~1603) : 조선 시대의 학자, 문신. 1567년 과거에 급제한 이래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정구와 곽재우 등 다수의 인물을 추천하는 등 인재등용에도 힘을 쏟았다.
  • 김창숙(金昌淑, 1879~1962) : 근현대의 유학자, 독립운동가. 김우옹의 후손으로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하였고, 일본에 의해 강점된 이후에는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 애국계몽운동 : 일본의 침략에 맞서 1905~1910년 사이에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우옹(1540-1603)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가 훼철된 서원을 대신하기 위해 설립한 서당이다. 지금의 건물은 1992년에 복원한 것이며, 2020년에 보수되었다.

김우옹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유학자 조식(1501-1572)의 제자이며, 156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청천서원은 1729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다. 이후 김우옹의 후손인 김호림이 자신이 거주하던 종택의 사랑채를 보수해 서당으로 활용하면서 ‘청천서당’으로 이름을 고쳤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교육가이자 김호림의 아들인 김창숙(1879-1962)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1910년에 ‘성명학교’로 다시 이름을 바꾼 후 애국계몽운동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강당과 대문채, 관리사 건물이 남아 있다. 강당 건물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전면에 툇마루를 덧달았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오른쪽에는 김우옹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 서당이 위치한 사도실마을은 의성김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 서당의 동쪽 뒤편에는 김창숙의 생가(경상북도 기념물 제83호)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안쪽에는 유림과 후손들이 힘을 합쳐 199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청천서원이 있다. 현판 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이며, 서원 내에 있는 경정각에는 김우옹이 1589년의 옥사에 연루되어 회령으로 유배되었을 때 중국 송나라 태조부터 명나라 태조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여 편찬한 『속자치통감강목』의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 청천서당은 2020년에 대대적으로 수리되었다.(검색된 내용들을 보면 2020년에 수리가 완료된 것으로 보임/ 확인 필요)

참고자료

  • 청천서당,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702610000 -> 청천서당은 동강 김우옹 선생을 제사지내던 집으로 조선 영조 5년(1729)년에 지어졌다. 처음에는 청천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회연서원과 함께 성주지역의 중심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 되었다. 그 후 동강의 12대 후손인 김호림에 의해 청천서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지었다. 1910년에는 심산 김창숙 선생이 청천서당을 성명학교라고 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위한 학교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김창숙 선생이 한때 머물던 장소이기도 하다.
  • 혼자 된 며느리에게 담배 가르친 시아버지, 오마이뉴스, 2015.6.2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8101 -> 심산이 태어난 사도실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답사단을 기다리는 동안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생가가, 오른쪽 길섶 동강의 불천위(不遷位)사당과 어깨를 맞댄 고가가 있다. 심산이 1910년에 연 성명학교(星明學校)다. 성명학교는 동향으로 배치된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집이다. 고종 때 청천서원이 훼철되자 심산의 부친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청천서당(晴川書堂)으로 중건했고, 심산이 여기에 성명학교를 연 것이다. 심산은 '김창숙이 나고 청천이 망하고 말았다'는 완고한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교를 강행했다. 2칸 대청 안벽에는 '청천서당' 현판이, 대청 앞 기둥에 '성명학교' 현판이 걸렸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 오른쪽에는 1칸 온돌방을 들였다.
  • 청천서원, 렌즈로 본 일상,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ds1265/222014559573 -> 청천서원 사진 / 청천서당 공사중 모습(2020년 작성)
  • [우리동네 이야기 속으로] 47. 성주 사도실마을, 경북일보, 2021.8.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807 -> 마을 전경 사진 보면 보수 끝난 듯함.
  • (참고) 속자치통감강목판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7025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