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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9일 (일) 11:37 기준 최신판



해설문 Interpretive Text

국문 Korean 영문 English
이 곳은 오명립(吳名立,1563~1633) 선생이 1614년(광해군 6)에 세운 정자로, 후학을 양성하는 서당의 역할도 하였다.

오명립은 자를 현백(顯伯), 호는 지선이라 했다. 본관은 보성이다.

성균관 생원[1]으로 태학(太學)에 들어가 학문을 닦다가 광해군의 폐모론(廢母論)[2]에 벼슬을 단념하고 향리에 들어왔다.

정자를 짓고 경서를 강론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빈민들을 구휼하는 등 선행을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안에는 송시열의 친필 목판이 걸려있다.

This pavilion was built in 1610 by O Myeong-rip (1563-1633), a Confucian scholar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served as a lecture hall where he taught his students.

While studying at Seonggyungwan, the National Confucian Academy, O gave up his pursuit of a career in government service due to political conflict caused by King Gwanghaegun (r. 1608-1623) and came back to his home village.

In addition to lecturing students on Confucian classics, he is known for his many good deeds such as helping the poor.

The pavilion contains a wooden plaque with calligraphy by Song Si-yeol (1607-1689), a great Confucian scholar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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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지선정


갤러리

위치


관련 항목

S V O
청주 지선정 hasType 유형문화재
청주 지선정 hasType 정자
청주 지선정 isCreatedBy 오명립
청주 지선정 hasType 서당
오명립 isMemberOf 성균관
청주 지선정 hasPart 팔작지붕
청주 지선정 hasPart 지선정_현판
지선정_현판 isCalligraphedBy 송시열

주석

  1. 조선시대 소과(小科)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 출처:"생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재위: 1567~1608)는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세자로 책봉하고자 하였으나, 전쟁기간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大北派)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영창대군을 견제하려는 대북파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광해군은 1613년 영창대군을 서인(庶人)으로 삼았다가 이듬해 살해하였고, 1618년에는 이이첨(李爾瞻) 등이 발의한 폐모론에 따라 선조의 계비이자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 지금의 덕수궁)에 유폐하였다. 이와 같은 '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유폐시키고 동생을 죽임)'는 이후 인조반정의 명분이 되었다. 참고: "광해군", 두산백과, "인조반정의 무대, 경운궁", 네이버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