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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청주시 문화유산]]

2020년 3월 29일 (일) 11:18 기준 최신판

해설문 Interpretive Text

국문 Korean 영문 English
고려 후기의 문신인 연담공 곽예(郭預,1232~1286) 선생의 묘소이다. 본래 묘소는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으나, 1975년 이곳으로 옮겼다. 최익현(崔益鉉)이 지은 묘표(墓標)와 김복한(金福漢)이 지은 신도비가 있다. 곽예 선생은 자를 선갑(先甲), 호는 연담이라 했으며, 본관은 청주이다. 1255년(고려 고종 42)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으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1286년(충렬왕 12)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감찰대부(監察大夫)가 되어 원나라 황제의 생일 축하사절로 가는 도중에 55세로 사망하였다. 연담공은 사람됨이 겸손하고 온화하여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하고, 글을 잘 지었다. 또한 명필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서법을 본받았다. 『동문선』에 「감도해(感渡海)」등 여러 편의 시가 전해오고 있다. This is the tomb of Gwak Ye (1232-1286), a scholar official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In 1255, Gwak placed first in the state service examination and served several important posts afterwards. He was a renowned poet and master calligrapher, with a number of followers of his calligraphy style. Some of his poems were recorded in Dongmunseon, Anthology of Korean Literature, published in 1478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Gwak was known as modest, harmonious, and kind to everyone. He died on the way to China in a mission to congratulate the Yuan emperor for his birthday. At the tomb, there are also a tombstone and a stele, with the epitaphs composed by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Choe Ik-hyeon and Kim Bok-han, respe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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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곽예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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