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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6일 (금) 02:42 기준 최신판

청양 영모재
Yeongmojae Ritual House, Cheongyang
"청양 영모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양 영모재
영문명칭 Yeongmojae Ritual House, Cheongyang
한자 靑陽 永慕齋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장승길 26-15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154호
지정일 1998년 1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청양 영모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청양 영모재는 함평이씨(咸平李氏) 좌찬성 이관(李瓘)과 그의 아들 이효원(李效元)을 기리는 ‘ㄱ’자 모양의 재실이다. 『함평세가(成平世家)』에 따르면 영모재는 1668년 이효원의 아들 이해(李邂)가 세웠다. 이관은 청양 지역에 처음 들어온 함평이씨의 시조이고, 이효원은 선조 말년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의 정권 쟁탈이 치열할 때 소북의 입장을 따르다가 거제도에 유배된 인물이다. 이효원은 인조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나자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해는 아버지가 유배되고, 형 이정(李壽)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죽자 벼슬을 단념하였으나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올랐고 함릉부원군(成陵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충정(忠靖)의 시호를 받았다. 이후 숙종 때 충민(忠敏)으로 다시 시호를 받았다. 청양 영모재는 1882년에 고쳐 지었는데, 재실 4칸, 협문 1칸, 곳간 2칸, 행랑채 19칸으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은 세워진 지 330여 년이 지났으나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청양 영모재 뒤쪽에는 이관과 이효원의 묘가 있다.

영문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for Yi Gwan (1523-1596),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and his son Yi Hyo-won (1550-1629). It was first built by Yi Hyo-won’s son Yi Hae in 1668 and was rebuilt in 1882. “Yeongmo (永慕)” means “to remember forever,” and this phrase is frequently used in the names of shrines and ritual houses as it conveys the heartfelt appreciation of descendants for the virtues of their ancestors.

Yi Gwan was the first person of the Hampyeong Yi Clan to settle in the Cheongyang area. After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48, he participated in the compilation of the Annals of King Jungjong and served as local magistrate in many regions.

Yi Hyo-wo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4 and was dispatched as an envoy to Ming China in 1603. He was involved in a turbulent political dispute and was sent in exile to Geojedo Island in 1609. After he was released from exile, he returned to his hometown in Cheongyang where he spent his last days.

The tombs of Yi Gwan and Yi Hyo-won are located behind this building.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이관(1523-1596)과 그의 아들 이효원(1550-1629)을 기리는 재실이다. 이효원의 아들인 이해가 1668년에 처음 지었고, 1882년에 고쳐 지었다. “영모(永慕)”는 “오래도록 사모한다”는 뜻으로, 부모나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는 의미를 나타내 사당이나 재사의 명칭에 자주 사용된다.

이관은 함평이씨의 청양 입향조이다. 1548년 과거에 급제한 후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지방관으로 여러 고을을 다스렸다.

이효원은 1584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1603년에는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치열한 당쟁에 휘말려 1609년 거제도에 유배되었고, 풀려난 후에는 고향인 청양에서 일생을 마쳤다.

영모재 뒤쪽에 이관과 이효원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