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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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곡사영산회괘불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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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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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괘불화는 실외의 의식에 사용된 대형의 불화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이 불화는 세로가 10m, 가로가 6.37m로 삼베 바탕이며, 1722년에 그려졌다. 화면구성은 비교적 단순한데, 본존인 여래와 좌우 협시보살이 화면을 가득 채우듯 표현되어 있고, 위쪽에 아난과 가섭, 두 구의 여래와 보살이 좌우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삼존의 존명은 통례로 보아 석가여래와 문수, 보현보살로 짐작된다.
+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불화이다. 경종 2년(1722)에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한 당대 최고의 승려 화가였던 의겸(義謙) 등이 괘불탱을 제작하였다.  
  
본존은 약간 둔중해 보이기는 하나 큰 화면에 어울리는 당당한 모습이며, 각 존상의 형상도 이지러짐이 없고 세부 묘사도 치밀하다. 채색은 상용에 어울리게 억제하여 붉은색과 녹청이 주조를 이루는데, 반면에 형식적이기는 하나 각 부분을 문양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
영산회 괘불탱의 크기는 가로 6.4m, 세로 10.4m이며, 무게는 114kg에 이른다. 중심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꽉 차게 그려 넣었고, 그 좌우에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지혜의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의 머리 주위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광배 뒤쪽에는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을 비롯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보불과 아미타불이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은 명료한 주제, 그에 어울리는 상형과 색채감으로 인하여 현현성(顯現性)에 성공한 작품으로 짐작한다.
+
그림 아래쪽 중앙에는 괘불을 만든 날짜, 제작에 참여한 신도와 승려, 시주 받은 물품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왕실의 장수를 기원하며 괘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승려 93명과 일반 신도 38명 등 모두 131명이 5개월 동안 제작 비용을 마련하였고, 작업을 완성하는 데만 40여 일이 걸렸다고 한다.
  
이 불화의 제작을 주도한 의겸(義謙)은 경상,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한 당대 최고의 화사(畵師)였다는 점에서 이 불화는 그 유파의 양식을 규명하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은 당대 최고의 승려 화가였던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서 18세기의 괘불탱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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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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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괘불탱: 괘불탱은 법당 밖에서 법회와 같은 불교 의식을 행할 때 걸어 놓는 의식용 불화이다.
괘불은 사찰에서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야외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데 쓰이는 그림이다.
 
  
이 괘불은 1722년에 승려화가인 의겸 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길이 10.4m, 폭 6.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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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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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ing Painting of Cheonggoksa Temple (The Vulture Peak Assembly)'''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가운데에 그리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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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ing banner paintings are displayed outdoors on special occasions such as the Buddha’s birthday, outdoor rites, and the funerals of eminent monks.
  
석가모니불은 화면 중심에 꽉 차게 그려 넣었으며, 머리 부분에는 광배가, 가슴 중앙에는 붉은색의 큰 만(卍)자가 그려져 있다. 좌우에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정형화된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 불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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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inting depicts the scene of the Buddha’s lecture at Vulture Peak. It was painted in 1722 by Uigyeom, a promiment painter-monk who was influential in the Gyeongsang-do and Jeolla-do areas. The painting measures 6.4 m in width, 10.4 m in height, and weighs 114 kg.
  
보살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 가섭을 비롯해 여러 불상이 / 석가의 제자인 아난과 가섭,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보불과 아미타불이''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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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ncipal buddha, Sakyamuni, is portrayed in the center foreground, with Samantabhadra (Bodhisattva of Great Conduct) and Manjusri (Bodhisattva of Wisdom and Insight) standing slightly behind him to his left and right, respectively. There is a halo surrounding Sakyamuni’s head that represents an auspicious light radiating from his body. His two most renowned disciples, Ananda and Maha Kasyapa, are portrayed next to the halo, together with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Great Compassion), Mahasthamaprapta (Bodhisattva of Wisdom and Strength), Prabhutaratna (Buddha of Abundant Treasure), and Amitabha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불화의 제작을 주도한 의겸(義謙)은 18세기에 경상,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의겸의 첫 작품이기도 한 이 괘불은 그를 계승하는 유파의 양식을 규명하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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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te when the painting was made, the followers and monks who participated in producing it, and the materials received as donations are recorded at the bottom of the painting in the center. According to these records, the painting was made to pray for the well-being and longevity of the royal family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also says that 93 monks and 38 followers secured the production expenses in five months and that it took about 40 days to complete the work.
  
*도난 시도(2000년)로 인한 보수 이력(2002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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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현재 소장정보 관련 -> 본래 청곡사 경내 영산회상전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결로 문제가 있어 지금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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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불은 사찰에서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야외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데 쓰였다.
*청곡사 연혁 정보 넣을 것인지.? -> 대안(해당내용 요약) : 청곡사는 879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1379년 신덕왕후의 원당사찰이 되어 중창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가람을 1612년 새롭게 조성하였다. 조선 말기에 대대적인 중수를 했지만 6·25 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었고, 수차례 걸쳐 중수와 보수 등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1차 수정====
 
괘불은 법당 밖에서 법회와 같은 의식을 행할 때 걸어놓는 예배용 그림이다.
 
 
 
청곡사의 괘불은 1722년 승려화가인 의겸 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가로 6.4m, 세로 10.4m이며, 무게는 114kg에 달한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화면 중심에 꽉 차게 그려 넣었으며,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고 보현보살은 지혜의 실천을 의미하는 보살이다.
 
 
 
석가모니불의 머리 주위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광배 뒤쪽에는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 그리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보불과 아미타불이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화면 하단 중앙에는 괘불을 만든 날짜, 제작에 참여한 신도와 승려, 시주 물품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왕실의 장수를 기원하며 괘불을 조성했으며, 승려 93명과 일반 신도 38명 등 총 131명이 5개월간 제작 비용을 마련하여, 총 40여 일만에 작업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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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의 괘불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한 최고의 승려화가인 의겸 등에 의해 1722년에 제작되었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6.4m, 세로 10.4m이며, 무게는 114kg에 이른다.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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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꽉 차게 그려 넣었고,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의 머리 주위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광배 뒤쪽에는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 그리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보불과 아미타불이 그려져 있다.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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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래쪽 중앙에는 괘불을 만든 날짜, 제작에 참여한 신도와 승려, 시주 받은 물품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조선 왕실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 괘불을 조성했다고 한다. 승려 93명과 일반 신도 38명 등 모두 131명이 5개월 동안 제작 비용을 마련하였고, 작업을 완성하는 데만 40여 일이 걸렸다고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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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1_1_0&ccbaCpno=1113803020000
 
*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1_1_0&ccbaCpno=1113803020000
 
*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2020. -> 2018년 11월까지 청곡사영산회괘불탱을 보관했던 곳은 청곡사 경내의 영산회상전이었다. 그러나 영산회상전은 건축상의 구조 결함으로 인해 지하 공간, 특히 수장고 쪽에 결로 현상이 심하다. 이에 따라 수장고에 보관했던 청곡사영산회괘불탱을 포함한 유물들은 안전을 위해 해인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 2000년 3월 16일 발생한 영산회괘불탱 도난 미수로 인한 손상 7군데를 수리하면서 2002년 6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전면 보존 처리를 했다.
 
*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2020. -> 2018년 11월까지 청곡사영산회괘불탱을 보관했던 곳은 청곡사 경내의 영산회상전이었다. 그러나 영산회상전은 건축상의 구조 결함으로 인해 지하 공간, 특히 수장고 쪽에 결로 현상이 심하다. 이에 따라 수장고에 보관했던 청곡사영산회괘불탱을 포함한 유물들은 안전을 위해 해인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 2000년 3월 16일 발생한 영산회괘불탱 도난 미수로 인한 손상 7군데를 수리하면서 2002년 6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전면 보존 처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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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국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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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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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불교문화유산]]

2022년 8월 28일 (일) 17:11 기준 최신판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
Hanging Painting of Cheonggoksa Temple (The Vulture Peak Assembly)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
영문명칭 Hanging Painting of Cheonggoksa Temple (The Vulture Peak Assembly)
한자 靑谷寺 靈山會 掛佛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18
지정번호 국보 제302호
지정일 1997년 9월 22일
분류 유물/불교회화/괘불화/석가불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폭
웹사이트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불화이다. 경종 2년(1722)에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한 당대 최고의 승려 화가였던 의겸(義謙) 등이 이 괘불탱을 제작하였다.

영산회 괘불탱의 크기는 가로 6.4m, 세로 10.4m이며, 무게는 114kg에 이른다. 중심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꽉 차게 그려 넣었고, 그 좌우에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지혜의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의 머리 주위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광배 뒤쪽에는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을 비롯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보불과 아미타불이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아래쪽 중앙에는 괘불을 만든 날짜, 제작에 참여한 신도와 승려, 시주 받은 물품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왕실의 장수를 기원하며 괘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승려 93명과 일반 신도 38명 등 모두 131명이 5개월 동안 제작 비용을 마련하였고, 작업을 완성하는 데만 40여 일이 걸렸다고 한다.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은 당대 최고의 승려 화가였던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서 18세기의 괘불탱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괘불탱: 괘불탱은 법당 밖에서 큰 법회와 같은 불교 의식을 행할 때 걸어 놓는 의식용 불화이다.

영문

Hanging Painting of Cheonggoksa Temple (The Vulture Peak Assembly)

Hanging banner paintings are displayed outdoors on special occasions such as the Buddha’s birthday, outdoor rites, and the funerals of eminent monks.

This painting depicts the scene of the Buddha’s lecture at Vulture Peak. It was painted in 1722 by Uigyeom, a promiment painter-monk who was influential in the Gyeongsang-do and Jeolla-do areas. The painting measures 6.4 m in width, 10.4 m in height, and weighs 114 kg.

The principal buddha, Sakyamuni, is portrayed in the center foreground, with Samantabhadra (Bodhisattva of Great Conduct) and Manjusri (Bodhisattva of Wisdom and Insight) standing slightly behind him to his left and right, respectively. There is a halo surrounding Sakyamuni’s head that represents an auspicious light radiating from his body. His two most renowned disciples, Ananda and Maha Kasyapa, are portrayed next to the halo, together with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Great Compassion), Mahasthamaprapta (Bodhisattva of Wisdom and Strength), Prabhutaratna (Buddha of Abundant Treasure), and Amitabha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The date when the painting was made, the followers and monks who participated in producing it, and the materials received as donations are recorded at the bottom of the painting in the center. According to these records, the painting was made to pray for the well-being and longevity of the royal family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also says that 93 monks and 38 followers secured the production expenses in five months and that it took about 40 days to complete the work.

영문 해설 내용

괘불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야외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데 쓰였다.

청곡사의 괘불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활약한 최고의 승려화가인 의겸 등에 의해 1722년에 제작되었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6.4m, 세로 10.4m이며, 무게는 114kg에 이른다.

중앙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꽉 차게 그려 넣었고,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의 머리 주위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광배 뒤쪽에는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 그리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보불과 아미타불이 그려져 있다.

그림 아래쪽 중앙에는 괘불을 만든 날짜, 제작에 참여한 신도와 승려, 시주 받은 물품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조선 왕실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 괘불을 조성했다고 한다. 승려 93명과 일반 신도 38명 등 모두 131명이 5개월 동안 제작 비용을 마련하였고, 작업을 완성하는 데만 40여 일이 걸렸다고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