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부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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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부용정
Buyongjeong Pavilion
창녕 부용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부용정
영문명칭 Buyongjeong Pavilion
한자 昌寧 芙蓉亭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곽천대산로 94-9 (냉천리)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13호
지정일 1990년 11월 1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창녕 부용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부용정은 정구(鄭逑)가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1580년(선조 13)에 지은 정자이다. 정구는 훗날 부용당 성안의(芙蓉堂 成安義)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다.

부용정은 1727년에 불에 타 1780년에 다시 지었는데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어 1955년에 복원하였다.

정구는 성안의의 스승으로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써 성리학을 전파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성안의는 임진왜란 때 창녕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웠고, 그 이후에는 여러 내·외관직을 두루 지냈다.

매년 부용정에서는 청명*·한식**에 맞춰 성안의를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다.


  • 춘분과 곡우 사이의 절기로 4월 5일 무렵
    •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로서 4월 5일 무렵

영문

Buyongjeong Pavilion

This pavilion was built in 1580 by Jeong Gu (1543-1620) when he was appointed as a governor of the Changnyeong area. It was used as a place for teaching local students. Later this pavilion was inherited by Jeong Gu’s student, Seong An-ui (1561-1629, pen name: Buyongdang).

Jeong Gu had a profound knowledge of Confucian classics, and was also knowledgeable about diverse fields of study, including medicine, history, astronomy, and feng shui. Yet, he did not pursue a political career and instead devoted himself to teaching the young generation of students.

Seong An-ui was a civil official born in Changnyeong. He mobilized a civilian army to fight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1592-1598). He later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Buyongjeong Pavilion was burned down in 1727 and reconstructed in 1780.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it was destroyed again and rebuilt in 1955. To the left of the pavilion there is a stele commemorating Seong An-ui, and behind it is a pavilion enshrining Seong An-ui’s portrait (Gyeongsangnam-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247).

A ritual ceremony honoring Seong An-ui is held here every spring.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정구(1543-1620)가 창녕 현감으로 부임한 1580년에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다. 정구는 훗날 제자인 성안의(1561-1629, 호: 부용당)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다.

정구는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약, 역사, 천문, 풍수 등 다양한 분야에 박학하였으며,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성안의는 임진왜란 때 창녕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웠고, 이후에는 여러 관직을 두루 지냈다.

부용정은 1727년에 불에 타 1780년에 다시 지었는데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소실되어 1955년에 복원하였다. 정자 왼쪽에는 성안의를 추모하는 비석이 있고, 뒤쪽에는 성안의의 초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이 모시기 위해 세워진 영정각이 있다.

매년 봄 이곳에서 성안의를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