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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연못  
 
* 용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연못  
** 성을 얻게 된 사연을 기록한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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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얻게 된 사연을 기록한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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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e Related to the Origin of the Changnyeong Jo 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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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 site of the origin myth of Jo Gye-ryong, the founder of the Changnyeong Jo Clan. There are three ponds and a monument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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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reign of King Jinpyeong (r. 579-632), the 26th ruler of the Silla dynasty (57 BCE-935 CE), a daughter of a literati became ill at the age of 16. Her illness was serious and she did not recover easily. One day she was told that she will get better if she takes a bath and prays at a pond in Hwawangsan Mountain, where a dragon is believed to live. So she went there and prayed. While still praying, the sky suddenly became cloudy, and a huge dragon came out from the pond, snatching the girl and taking her underwater. A little later, the girl emerged from the pond and went back home. She became pregnant and had a dream in which she learned the baby will become a noble man. The girl bore a son who had the Chinese character, Jo (曺), marked on his underarm. The boy grew to be a man of fine character and righteousness. The king heard this story and bestowed him the surname Jo and the given name Gye-ryong (繼龍), meaning "descendant of a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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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ument here was erected in 1897 by Jo Si-yeong (1843-1912), a scholar-official of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He was the provincial governor of Gyeongsang-do Province at that time. The monument bears an inscription which means, “A pond where the family name of the Changnyeong Jo Clan originated.”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창녕조씨 시조인 조계룡의 탄생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으로 연못 3곳과 비석 1기가 있다.  
 
이곳은 창녕조씨 시조인 조계룡의 탄생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으로 연못 3곳과 비석 1기가 있다.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 때 문인 이광옥의 딸 예향이 16세에 중병에 걸려 낫지 않았다. 화왕산에 용이 산다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하여 갔다.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며 연못에서 큰 용이 나와 예향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예향이 물속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예향은 태기가 있었고, 장차 귀한 사람이 될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예향은 아들을 낳았고, 아이의 겨드랑이 밑에 ‘조’자가 있었다. 아들은 바르고 의로운 사람으로 자랐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아들을 불러다가 ‘조‘씨 성에 ’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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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재위 579~632) 때 문인 이광옥의 딸 예향이 16세에 중병에 걸려 낫지 않았다. 화왕산에 용이 산다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하여 갔다.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며 연못에서 큰 용이 나와 예향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예향이 물속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예향은 태기가 있었고, 장차 귀한 사람이 될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예향은 아들을 낳았고, 아이의 겨드랑이 밑에 ‘조’자가 있었다. 아들은 바르고 의로운 사람으로 자랐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아들을 불러다가 ‘조‘씨 성을 하사하고 “용의 후손”이라는 뜻의 ’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득성비는 1897년에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시영(1843-1912)이 경상남도 관찰사로 왔을 때 세운 것으로 ‘창녕조씨 성이 비롯된 연못’이라는 뜻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득성비는 1897년에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시영(1843-1912)이 경상남도 관찰사로 왔을 때 세운 것으로 ‘창녕조씨 성이 비롯된 연못’이라는 뜻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2019년 11월 1일 (금) 08:33 기준 최신판

창녕조씨 득성설화지
Site Related to the Origin of the Changnyeong Jo Clan
창녕조씨 득성 설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조씨 득성설화지
영문명칭 Site Related to the Origin of the Changnyeong Jo Clan
한자 昌寧曺氏 得姓說話址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322번지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246호
지정일 2003년 4월 17일
분류 기록유산/문서류/민간문서/기타류
수량/면적 10,053㎡
웹사이트 창녕조씨 득성 설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조씨 득성 설화지는 창녕 조씨의 성이 생겨난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용지* 3곳과 득성비** 1기가 있다.

신라 진평왕 때 한림학사 이광옥에게는 딸 예향이 있었는데 16세에 ‘청룡병’이라는 병에 걸려 배가 부어올라 고생을 하여 온갖 정성을 쏟아도 낫지 않았다. 하루는 비범한 사람이 와서 화왕산의 용담에 가서 기도를 하고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했다. 이광옥이 딸을 데리고 가 기도를 하는데 하늘이 흐려지며 용담에서 큰 용이 나와 예향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하늘이 맑아지고 예향이 물속에서 나왔는데 이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꿈에 그 아이는 용의 아들로 이름은 옥결이며, 장차 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다. 옥결은 커서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가 있었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옥결을 불러다가 조(曺)를 성으로 하사하고, 이름을 계룡이라 지어주니 창녕 조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득성비는 1897년에 경상남도 관찰사 조시영(曺始永)이 세운 것으로 ‘창녕조씨 득성지지(昌寧曺氏 得姓之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 용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연못
  • 성을 얻게 된 사연을 기록한 비석

영문

Site Related to the Origin of the Changnyeong Jo Clan

This is a site of the origin myth of Jo Gye-ryong, the founder of the Changnyeong Jo Clan. There are three ponds and a monument here.

During the reign of King Jinpyeong (r. 579-632), the 26th ruler of the Silla dynasty (57 BCE-935 CE), a daughter of a literati became ill at the age of 16. Her illness was serious and she did not recover easily. One day she was told that she will get better if she takes a bath and prays at a pond in Hwawangsan Mountain, where a dragon is believed to live. So she went there and prayed. While still praying, the sky suddenly became cloudy, and a huge dragon came out from the pond, snatching the girl and taking her underwater. A little later, the girl emerged from the pond and went back home. She became pregnant and had a dream in which she learned the baby will become a noble man. The girl bore a son who had the Chinese character, Jo (曺), marked on his underarm. The boy grew to be a man of fine character and righteousness. The king heard this story and bestowed him the surname Jo and the given name Gye-ryong (繼龍), meaning "descendant of a dragon."

The monument here was erected in 1897 by Jo Si-yeong (1843-1912), a scholar-official of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He was the provincial governor of Gyeongsang-do Province at that time. The monument bears an inscription which means, “A pond where the family name of the Changnyeong Jo Clan originated.”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창녕조씨 시조인 조계룡의 탄생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으로 연못 3곳과 비석 1기가 있다.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 때 문인 이광옥의 딸 예향이 16세에 중병에 걸려 낫지 않았다. 화왕산에 용이 산다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하여 갔다.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며 연못에서 큰 용이 나와 예향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예향이 물속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예향은 태기가 있었고, 장차 귀한 사람이 될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예향은 아들을 낳았고, 아이의 겨드랑이 밑에 ‘조’자가 있었다. 아들은 바르고 의로운 사람으로 자랐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아들을 불러다가 ‘조‘씨 성을 하사하고 “용의 후손”이라는 뜻의 ’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득성비는 1897년에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시영(1843-1912)이 경상남도 관찰사로 왔을 때 세운 것으로 ‘창녕조씨 성이 비롯된 연못’이라는 뜻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