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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현성은 계족산 자락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해발 334m)와 남쪽 골짜기를 둘러 쌓은 석성으로,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 지역에 도읍을 두고 있던 6-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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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기원전 18년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가, 475년에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겼고, 538년에 사비로 다시 도읍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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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바로 남쪽에 대전에서 옥천 등지의 동쪽으로 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치 고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대전 동쪽 지역의 방어를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성의 이름 역시 이 고개의 한자이름[迭峴]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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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모서리를  다듬은 사각형 모양의 돌을 아래부터 조금씩 안으로 들여 쌓는 형태로 만들었으며, 곳곳에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성의 둘레는 약 80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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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에 문이 있던 흔적이 남아있으며, 남쪽 문이 성으로 출입하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서는 백제와 신라 때의 토기 조각과 조선시대의 자기 조각이 함께 출토되어 이 성이 조선시대에도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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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에서 북쪽 방향에 있는 계족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100-200m 간격을 두고 질현성의 보조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6개의 작은 성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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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을 『삼국사기』에 언급된 백제 부흥군의 거점 ‘지라성(또는 지리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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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현성,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332500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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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청마산성]] -> 사비시대 설명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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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산성의 도시 대전 – 질현성, 시티저널, 2021.3.26.  http://www.gocj.net/news/articleView.html?idxno=11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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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흥운동의 거점 질현성. 지역N문화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fortress/story/5864?jsi= -> 질현성의 특징은 산성에서부터 북쪽으로 능선을 따라 질현성을 보완하는 보루(堡壘)가 6곳에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산성 남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대전시사지가 조망되고 동쪽으로는 대청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2021년 6월 17일 (목) 22:38 판


질현성
질현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질현성
한자 迭峴城
주소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 산31-1번지
지정번호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8호
지정일 1989년 3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11,107㎡
웹사이트 질현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재청.



해설문

국문

질현성은 백제 사비 시대에 동쪽의 옥천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돌로 쌓은 성으로, 대전 동쪽 계족산 자락의 길치고개 북쪽에 있다. 이 지역에는 계족산성을 비롯하여 높은 산봉우리에 많은 산성들이 분포하고 있다. 질현성에서 계족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100~200m 간격으로 산봉우리에 6개의 보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규모나 위치로 보아 계족산성을 보조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은 표고 334m의 동서 방향의 봉우리와 남쪽의 골짜기를 둘러싼 장방형의 포곡식(抱谷式: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벽을 쌓는 방식) 산성인데, 둘레가 약 800m이고, 동·서·남쪽에 출입문 자리가 있다. 석축이 잘 남아 있는 동벽과 북벽을 보면 장방형의 돌을 나란하게 안으로 들여쌓았는데, 이런 석축 방식은 계족산성에서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나라 장수인 유인궤·유인원 등이 ‘지라성(支羅城)’ 혹은 ‘지리성(支離城)’에서 백제 부흥군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에 나온 ‘지라성’ 혹은 ‘지리성’이 질현성인 것으로 추측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질현성은 계족산 자락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해발 334m)와 남쪽 골짜기를 둘러 쌓은 석성으로,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 지역에 도읍을 두고 있던 6-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가, 475년에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겼고, 538년에 사비로 다시 도읍을 옮겼다.

성의 바로 남쪽에 대전에서 옥천 등지의 동쪽으로 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치 고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대전 동쪽 지역의 방어를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성의 이름 역시 이 고개의 한자이름[迭峴]에서 비롯되었다.

성벽은 모서리를 다듬은 사각형 모양의 돌을 아래부터 조금씩 안으로 들여 쌓는 형태로 만들었으며, 곳곳에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성의 둘레는 약 800m이다.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에 문이 있던 흔적이 남아있으며, 남쪽 문이 성으로 출입하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서는 백제와 신라 때의 토기 조각과 조선시대의 자기 조각이 함께 출토되어 이 성이 조선시대에도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에서 북쪽 방향에 있는 계족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100-200m 간격을 두고 질현성의 보조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6개의 작은 성이 설치되어 있다.

이 성을 『삼국사기』에 언급된 백제 부흥군의 거점 ‘지라성(또는 지리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