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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이세후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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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이세후 종가
대표명칭 진주 이세후 종가
한자 晋州 李世垕 宗家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길51번길 18-8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414호
지정일 2006년 11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건물 10동(3,444㎡)
웹사이트 "진주 이세후 종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재령 이씨 집성촌인 이곳에 지어진 종가는 이세후가 낙향하여 살던 집이다. 크게 살림집, 정자, 집안의 제사를 지내는 가묘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에는 살림집과 가묘만 있었으나 나중에 마을 앞에 있던 계상정, 임간정, 만수정 등의 정자를 종가 옆으로 옮겼다.

살림집은 안채, 사랑채, 방앗간채, 광채 등이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전통 가옥의 대표적인 배치 구도 중 하나이다. 건물의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36년에, 사랑채는 1853년에 세워졌다.

이세후는 진주에서 출생했으며, 영조 2년(1726)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과 병조정랑을 역임하였다. 훗날 이곳에 낙향하여 향약을 정비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세후(1681-?)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진주에서 태어난 이세후는 1726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향약을 정비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 마을은 이세후의 가문인 재령이씨의 집성촌이다.

이 집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방앗간채, 광채가 ㅁ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영역의 우측에는 가묘와 정자들이 있다. 안채는 1836년에, 사랑채는 1853년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