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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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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발원문의 내용을 볼 때,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현진’의 행적에 초점을 둔 문장으로 판단됨 / 설명에 넣을 것인지 고민.
 
*복장발원문의 내용을 볼 때,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현진’의 행적에 초점을 둔 문장으로 판단됨 / 설명에 넣을 것인지 고민.
 
*발원문은 불상에 다시 납입된 상태이다. - 언제인지 확인 필요.
 
*발원문은 불상에 다시 납입된 상태이다. - 언제인지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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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인으로 죽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1612년 조각승 현진(玄真)이 4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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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현재 남아있는 그의 작품 중 17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현진이 만든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며, 현진이 제작한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여 양식상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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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 주름이 길게 나타나며, 이는 현진이 조성한 불상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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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30일 (월) 15:22 판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at Wolmyeongam Hermitage, Jinju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영문명칭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at Wolmyeongam Hermitage, Jinju
한자 晉州 月明庵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277-3
지정번호 보물 제1686호
지정일 2010년 12월 21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월명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복장발원문에 의하면 1612년에 수화승 현진(玄眞)이 학문, 명은, 의능, 태훈 4명의 조각승과 함께 제작한 불상으로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동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련대 관음보살좌상에서 공덕주로 나오는 벽암각성이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는 복장시주자로 나타나서 불상제작에 벽암각성이 깊이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두부는 둥글고 높은 복발형으로 앞으로 살짝 숙이고 있다. 나발 사이에 둥근 정상계주와 반달형의 중간계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호는 갸름한 타원형으로 이마는 넓은 편이며 반으로 감은 두눈은 좌우로 길게 뻗어 있다. 호형을 그리며 내려오는 콧대는 콧등이 얇고 돌출되어 있으며, 작은 입술에는 미소를 짓고 있어 전반적으로 인자한 모습이다. 넓은 어깨에 가슴은 편평하여 양감 있고, 허리는 길며 아랫배는 살짝 부풀어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리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올려 자연스럽게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하체는 오른발을 위로 올린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루릎은 낮고 넓은 편이어서 안정적인 자세이다. 법의는 일반적인 이중착의법으로 착용하였으며, 승각기는 가슴까지 올려 일자로 표현하였다. 다리를 덮은 대의자락은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의 주름이 길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표현은 동시 조성된 상련대관세음보살좌상과 유사하다.

월명암 아미타불좌상은 현전하는 현진작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현진작 불상의 양식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아울러 1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불상양식의 편년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수정 국문

초고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월명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12년 조각승 현진(玄真)이 4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한 것이다.

아미타불좌상은 나발 사이에 둥근 정상계주와 반달형의 중간계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댄 상태로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올리려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게 두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 주름이 길게 나타나며, 이는 현진이 조성한 불상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진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이 불상은 높이 80cm의 아담한 크기지만 현진이 만든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현진이 제작한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여 양식상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1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불상양식의 편년을 나타내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또한 발원문에 조각승 이름 위에 직위가 명시되어 있어 이를 통해 조각승의 서열 및 체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2010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 복장발원문의 내용을 볼 때,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현진’의 행적에 초점을 둔 문장으로 판단됨 / 설명에 넣을 것인지 고민.
  • 발원문은 불상에 다시 납입된 상태이다. - 언제인지 확인 필요.

1차 수정

이 불상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인으로 죽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1612년 조각승 현진(玄真)이 4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하였다.

현진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현재 남아있는 그의 작품 중 17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현진이 만든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며, 현진이 제작한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여 양식상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아미타여래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 주름이 길게 나타나며, 이는 현진이 조성한 불상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