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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정설 부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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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신안동 정설 부부 묘
"진주 신안동 정설 부부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신안동 정설 부부 묘
한자 晋州 新安洞 鄭舌 夫婦 墓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 산5번지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252호
지정일 2003년 10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2,000㎡)
웹사이트 "진주 신안동 정설 부부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설 부부묘는 진주 지역 호족인 정설과 그 부인 강씨(姜氏)를 합장한 조선 초기의 무덤이다. 부부를 한 무덤에 묻은 까닭에 무덤 모양이 6.8m×4.8m 크기의 옆으로 긴 사각 모양이 되었다.

무덤 주위에는 담장을 둘렀고, 바닥에는 넓적한 돌을 깔았다. 무덤은 무덤 옆을 감싸고 있는 둘레돌 위에 흙을 얹은 모양이다. 둘레돌은 석탑을 만드는 방식과 같이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돌을 놓은 뒤 덮개돌을 얹었다. 둘레돌의 앞부분에는 무덤 주인에 대한 글을 새겼다. 부인 강씨는 조선 태조 4년(1395)에 장사 지냈고, 남편 정설은 조선 세종 4년(1422)에 사망하여 이듬해인 세종 5년에 장사 지냈다는 내용이다.

정설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왜구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무덤은 무덤 주인과 만든 시기가 분명한 무덤이다. 조선 초기에 부부를 합장한 경우는 드물어서 합장 무덤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둘레돌에 새겨진 글을 통하여 당시 진주 지역의 가족사와 인물을 연구하는 데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무덤은 진주 지역의 호족인 정설(?-1422)과 그 부인 강씨(?-1395)를 합장한 조선 초기의 무덤이다.

무덤은 2단으로 된 석축 위에 만들어졌으며, 가로 6.8m, 세로 4.8m 크기의 옆으로 긴 사각형 모양이다. 무덤 아랫부분을 감싸고 있는 둘레돌의 전면에는 여러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에 의하면 정설은 고려 말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조선 태조(재위 1392-1398)로부터 서대를 하사받았다. 또한 부인 강씨는 1395년에 장사지냈고, 정설은 1422년에 사망하여 이듬해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부부를 합장한 경우는 드물어서 합장 무덤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둘레돌에 새겨진 글은 당시 진주 지역의 가족사와 인물을 연구하는 데에도 좋은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