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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담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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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담산 고택
진주 담산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담산 고택
한자 晉州 澹山 古宅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746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8호
지정일 2011년 7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지/주거지
수량/면적 8동/719.3㎡
웹사이트 진주 담산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담산고택은 안채, 사랑채, 별채, 곳간채와 근년에 지은 행랑채, 정암정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1864년), 사랑채(1871년), 별채(1916년)가 세워진 시기가 달라서 건축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1923년 담산 하우식(하우식(河祐植, 1875~1943))이 한차례 고쳐 지었다.

창주(滄洲) 하증(河澄, 1563~1624)의 후손인 담산 하우식의 호를 따서 ‘담산고택’이라 이름 지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중기의 학자 하증(1563-1624)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살림집이다.

집은 안채, 사랑채, 별채, 곳간채, 행랑채, 정암정 등 총 8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1864년에, 사랑채는 1871년에, 별채는 1916년에 각각 지어졌으며, 1923년 하우식(1875-1943, 호 담산)이 전체적으로 고쳐 지은 이후 하우식의 호를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지방사족의 가옥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이 집은 1800년대 중엽부터 1900년대 중엽까지 차례대로 건물이 지어져서 가옥의 형태 변화를 살필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진양 하씨 가문에서 소장한 여러 고문서들과 목판 등을 보관하고 있다.

  • [진양하씨 단지종택] 참조 -> 이 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하협(1583-1625, 하증 동생)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해당 내용 검토 후 반영여부 결정 필요 / 변경 시 ; 조선 중기의 학자 하증(1563-1624)의 동생 하협(1583-1625)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 당시 집터를 조성할 때 나무 위에 앉아 있던 학(鶴) 두마리가 앞산으로 날아갔다고 해서 이곳을 '해기터(학터:鶴基)'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 단지종택은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는 중심채영역과 좌우에 담장으로 구획된 아래채영역, 윗채영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864년, 사랑채는 1871년에 하계룡(1851~1932, 하우식의 부친)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별채는 1916년에 건립되었다. 행랑채, 정암정 등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며, 곳간채는 내부는 수리했지만 외관이 그대로 남아있다.
  • 담산 고택은 구인회 처가댁으로 구범모 회장은 이곳 외가댁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