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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칠전리 학계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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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칠전리학계철비
진도 칠전리 학계철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도칠전리학계철비
한자 珍島七田里學계鐵碑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173번지
지정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202호
지정일 2002년 4월 19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진도 칠전리 학계철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수정 국문

초고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에 있는 쇠로 만든 철비이다. 1684년(숙종 10) 칠전리 주민들이 서당인 노암재(露岩齋)를 세우고서 학계(學契)를 결성하고, 1714년(숙종 40) 학계 운영에 관한 사항을 기록해 두기 위해 철비를 건립하였다. 높이 1.4m, 너비 47.5㎝, 두께 6.5㎝이다. 상단의 장식 외에 별 특징은 없다. 앞면에는 학계에 참여한 11명의 이름과 학문을 격려하는 글이 있고, 뒷면에는 학전(學田) 15필지 52.947㎡를 모은 내력이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의 철물 공출 때 학계원들이 결사적으로 이를 보존했으며, 철비를 보호할 목적으로 유후각(裕後閣)이란 이름의 58㎡짜리 비각을 지었다. 매년 음력 3월 6일에 철비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칠전리 학계철비는 조선 후기 향촌사회사 및 교육사를 살피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문맥요소

  • 노암재 - 장소 - 칠전리 산 173번지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 학계 – 사건 - 박윤순의 아들 6형제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뒤 인척 5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검토의견

1차 수정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