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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Cemetery of Soldiers from Jindo Who Di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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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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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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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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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역은 정유재란(1597~1598) 때에 순절한 진도 사람들의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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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진도의 명량 해협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함선을 보호하기 위해 곧바로 서쪽으로 후퇴했기 때문에 진도는 상륙한 왜군의 공격을 받았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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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진도 지역 관군은 군수 송덕일이 지휘하여 반격했으나 전투 과정에서 진도의 뜻있는 의병들이 많이 전사하였다. 이곳은 이때에 순절한 병사들을 수습하여 묻은 곳이다. 이곳에는 모두 무덤이 232기가 있는데, 대부분 정유재란 때에 순절한 사람들의 묘로 보인다. 이 가운데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진도의 사족인 조응량(선무원종공신), 그의 아들 조명신(선무원종공신), 박헌(증병조참판), 김성진(선무원종공신, 남원전투 순직), 김홍립 등 16명이다.
====초고====
 
정유재란 때 순절한 사람들의 무덤을 집단적으로 조성해놓은 묘역이다. 명량대첩 직후에 이순신은 수군의 함대 보전을 위해 곧바로 서쪽 바다로 이동했으나, 해남 전라우수영과 진도는 뒤쫓아 온 일본수군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진도지역 관군은 군수 송덕일(宋德馹)의 지휘 하에 반격했으나 전투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때 순절한 병사들을 수습하여 매장한 무덤이 도평리 송우산 기슭에 있는데, 이곳이 정유재란 순절묘역이다. 진도군 내 사족인 조응량(曺應亮)의 무덤을 비롯하여 모두 232기이다. 일부 무연고자의 묘가 섞여 있기는 하나 대부분 정유재란 때 순절한 사람들이다. 이름이 확인되는 사람은 조응량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 명신(命新·선무원종공신), 박헌(朴軒·증병조참판), 김성진(金聲振·선무원종공신, 남원전투 순직), 김홍립(金弘立) 16기이다. 그 나머지는 이름 없는 무덤이다. 이곳은 벽파진이나 명량진에서 15리 거리이며, 처음 진도군이 생길 때인 1440년경에 창녕조씨와 김해김씨에게 나누어준 땅이었다고 한다. 묘역 아래에는 순절자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을 건축해놓았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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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명량대첩 – 사건 -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어란포(於蘭浦)를 출발한 왜선 133척을 맞아 이순신의 지휘 하에 12척의 병선으로 필사의 전투를 벌여 31척의 왜선을 불사르고 적의 함대를 물리친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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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metery of Soldiers from Jindo Who Di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 송덕일 – 지휘관 -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치원(致遠), 호는 조은(釣隱). 진도군수로 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서훈되었다.
 
* 조응량 – 묘주 - 본관은 창녕. 명량대첩에서 부자가 함께 순절한 선무원종공신이다.
 
  
====검토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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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cemetery of soldiers from Jindo who di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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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the Korean naval forces led by Yi Sun-sin (1545-1598) had a great victory against the Japanese naval forces at Myeongnyang Strait, Jindo. However, the Korean naval forces had to retreat to the west in order to protect the fleet, so Jindo was attacked by the Japanese army. The royal forces from Jindo counterattacked, but they suffered a great number of casualties. At that time, the bodies of the soldiers were collected, and they were buried in this cemetery.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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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emetery has 232 tombs, among which only 16 have been identified, including Jo Eung-ryang, his son Jo Myeong-sin, Bak Heon, Kim Seong-jin, Kim Hong-rip and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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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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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1597-1598) 때 순절한 진도 사람들의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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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진도의 명량해협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함선을 보호하기 위해 곧바로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진도는 왜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진도 지역 관군이 반격했으나 전투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때 순절한 병사들을 수습하여 이곳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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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모두 232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조응량, 그의 아들 조명신, 박헌, 김성진, 김홍립 등 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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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
Cemetery of Soldiers from Jindo Who Di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진도 정유재란 순절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
영문명칭 Cemetery of Soldiers from Jindo Who Di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한자 珍島丁酉再亂殉節墓域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117-3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
지정일 2001년 9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32기
웹사이트 진도 정유재란 순절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묘역은 정유재란(1597~1598) 때에 순절한 진도 사람들의 묘역이다.

정유재란 때 진도의 명량 해협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함선을 보호하기 위해 곧바로 서쪽으로 후퇴했기 때문에 진도는 상륙한 왜군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진도 지역 관군은 군수 송덕일이 지휘하여 반격했으나 전투 과정에서 진도의 뜻있는 의병들이 많이 전사하였다. 이곳은 이때에 순절한 병사들을 수습하여 묻은 곳이다. 이곳에는 모두 무덤이 232기가 있는데, 대부분 정유재란 때에 순절한 사람들의 묘로 보인다. 이 가운데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진도의 사족인 조응량(선무원종공신), 그의 아들 조명신(선무원종공신), 박헌(증병조참판), 김성진(선무원종공신, 남원전투 순직), 김홍립 등 16명이다.

영문

Cemetery of Soldiers from Jindo Who Di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This is the cemetery of soldiers from Jindo who di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the Korean naval forces led by Yi Sun-sin (1545-1598) had a great victory against the Japanese naval forces at Myeongnyang Strait, Jindo. However, the Korean naval forces had to retreat to the west in order to protect the fleet, so Jindo was attacked by the Japanese army. The royal forces from Jindo counterattacked, but they suffered a great number of casualties. At that time, the bodies of the soldiers were collected, and they were buried in this cemetery.

The cemetery has 232 tombs, among which only 16 have been identified, including Jo Eung-ryang, his son Jo Myeong-sin, Bak Heon, Kim Seong-jin, Kim Hong-rip and others.

영문 해설 내용

정유재란(1597-1598) 때 순절한 진도 사람들의 묘역이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진도의 명량해협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함선을 보호하기 위해 곧바로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진도는 왜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진도 지역 관군이 반격했으나 전투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때 순절한 병사들을 수습하여 이곳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이곳에는 모두 232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조응량, 그의 아들 조명신, 박헌, 김성진, 김홍립 등 1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