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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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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3월 25일 (수) 04:59 판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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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향교
Jindo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진도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도향교
영문명칭 Jindo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한자 珍島鄕校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진도향교길 68-5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지정일 1985년 2월 25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진도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방에 설립한 국가교육기관이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 군강남 건립(현 향현사 부근), 조선 현종 9년(1667)에 이곳으로 옮긴 후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묘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 20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 그리고 유생들이 수학하던 명륜당과 제관실, 관리실 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쳐들어왔을 때 유림이었던 김희남 선생께서 대성전에 봉안한 5성 20현의 위패를 시봉하고 북산 상굴로 피난하면서 명륜당 기둥에다 ‘천하기무부자도(天下豈無夫子道)’라는 7자를 써붙여 놓았다. 그 뒤 왜병들이 향교에 침입하여 소각하려다가 명륜당 기둥에 붙여져있는 이 7자를 보고 그 글귀에 경탄하고 글귀 옆에 다시 ‘차지역유충열사(此地亦有忠烈士)’라는 글을 써 붙인 다음 스스로 후퇴하였다는 옛 이야기가 있다.

수정 국문

초고

1438년(세종 20)경에 건립된 지방 국립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유학 교육으로 교화된 사회를 만들고자 설립·운영되었다. 1438년 지금의 향현사 부근에 향교를 건립하여 봉향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475년(성종 6)에 지금의 동외리 동편 오리정 산자락에 남향으로 옮겼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 소실 위험에 처하자, 김희남 형제 등이 5성10철의 위패만 북산으로 옮겨 임시로 보관해두었다가 평정된 후 환안하였다고 한다. 1623년(인조 1)에 진도읍성 남쪽에 새로 건물을 지어 봉안하고, 1667년(현종 8) 현 위치에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묘(文廟)와 명륜당(明倫堂)·재(齋)·기타 부속 건물로 구성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이다. 대성전은 비교적 경사가 심한 지형에 막돌 축대 위에 조영되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이다. 5성과 송조2현, 동방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인 동재,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교직사로 이용되고 있는 서재가 있다. 향교 내외에는 선정비 등 총 39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해마다 봄·가을로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문맥요소

  • 전학후묘(前學後廟) – 구조 - 교육공간으로서 강의실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재가 앞에 있고, 제향공간으로 대성전이 북쪽에 위치해있는 구조이다.

검토의견

1차 수정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