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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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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9월 2일 (월) 09: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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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 선생 묘
대표명칭 조욱 선생 묘
한자 趙昱 先生 墓
주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 산7
지정번호 양평군 향토유적 제26호



해설문

국문

용문(龍門) 조욱(1498~1557)은 중종 14년(1519) 스승 조광조 등이 제거되는 사건(기묘사화)이 있었으나 당시 나이가 어려 화를 입지 않았다. 후에 세상을 피해 용문산에 살며 학문을 닦았고, 사람들은 조욱을 ‘용문 선생’이라 불렀다. 조욱이 이 고장에 머문 이후 용문면 덕촌리 일대에 평양 조씨 가문이 대대로 살고 있다. 묘는 새로 꾸민 것이다.

용문면 덕촌리에 조욱과 관련한 문화유산과 이야기가 전한다. 세심정(洗心亭)은 조욱이 제자와 학문을 강론하던 곳에 세운 정자이며, 운계서원(雲谿書院)은 제자들이 조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한편 덕촌리는 조욱이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살았던 동네라 하여 퇴촌이라고도 불린다.

영문

This is the tomb of Jo Uk (1498-1557), a scholar of the mid Joseon period.

Jo Uk was a student of Jo Gwang-jo (1482-1519), a prominent scholar and an influential civil official of the early Joseon period.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19, Jo Gwang-jo was persecuted and his followers were exiled or discharged of their posts. However, Jo Uk survived because he was too young. After then he led a secluded life in Yongmunsan mountain studying and teaching. Thus people called him ‘Master Yongmun.’ He was also good at poetry and drawing.

Deokchon-ri, where Jo Uk lived after retirement, is also called as “Toechon,” meaning a village of retreat. Since Jo Uk moved into this village, his descendants of Pyeongyang Jo Clan have continued to reside here. There is a pavilion called “Sesimjeong” built on the spot where Jo Uk lectured his students. Also a Confucian Academy called “Ungyeseowon (경기도 문화재자료 No.18)” was established by his students in memory of their teacher.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학자인 조욱(1498-1557)의 묘이다.

조욱은 조선의 유명한 성리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조광조(1482-1519)의 제자이다. 1519년에 일어난 사화 때 스승 조광조와 그 문인들이 유배되거나 파직되었으나 조욱은 나이가 어려 화를 면했다. 이후 용문산에 은거하며 학문과 교육에 힘썼고, ‘용문 선생’이라 불렸다. 시문과 서화에도 능했다.

덕촌리는 조욱이 은퇴 후 살았던 동네라 하여 ‘퇴촌’이라고도 불린다. 조욱이 이 마을에 머문 이후 그의 후손인 평양 조씨 가문이 대대로 살고 있다. 이 마을에 있는 세심정은 조욱이 제자와 학문을 강론하던 곳에 세운 정자이며, 운계서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8호)은 제자들이 조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