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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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2월 2일 (월) 14:53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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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 制勝堂
Goto.png 종합안내판: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해설문

국문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이순신이 부하들과 작전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던 곳이다. 이곳은 현재의 해군작전사령관실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다. 이순신은 선조 26년(1593) 7월 15일부터 한양으로 압송되어 갔던 해인 선조 30년(1597) 2월 26일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주둔했다.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제승당은 이충무공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 업무를 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화약을 사용한 신무기인 총통의 제작과 보급에도 힘썼다. 이곳은 1,491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 중 1,029일의 일기와 많은 시가 쓰인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이순신이 기거했던 운주당(運籌堂)*의 터이다. 이순신은 운주당을 집으로 사용하는 한편 집무실로도 사용하였다. 당시의 운주당은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파직된 후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폐허가 되었다. 이후 영조 16년(1740)에 통제사 조경(趙儆)이 다시 세우고 이름을 제승당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제승당은 1976년 제승당 정화사업 때 다시 지은 것이다.


  • 운주(運籌): 지혜로 계책을 수립한다는 뜻

영문

Jeseungdang Hall

This is the former site of Unjudang, Admiral Yi Sun-sin’s residence and naval command cent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Yi Sun-sin resided here for 3 years and 8 months, from 1593 until 1597.

Here, Yi and his subordinates planned their battle tactics and worked on improving the cannons for warships. During his time here, Yi handwrote a significant portion of his daily journal, entitled War Diary (Nanjung ilgi).

Following a conspiracy, Yi was removed from office and was forced to leave Unjudang in March 1597. After the Korean navy suffered a defeat at the Battle of Chilcheollyang Strait in August that year, the command post was abandonded. In 1739, Admiral Jo Gyeong (1677-1743), who was newly appointed as Navy Commander of the Three Provinces at that time, erected a monument and constructed this building to commemorate this site. The name of the building, Jeseungdang, means “the place where victory is made.”

The building was renovated in 1976. Inside, there are paintings depicting Yi Sun-sin’s military exploits and replicas of cannons and a turtle ship us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원래 이순신의 거처이자 집무실이었던 운주당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은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후 1597년까지 약 3년 8개월간 이곳에서 주둔했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부하들과 작전 계획을 세우고, 화약을 사용한 신무기인 총통을 제작하는 데에도 힘썼다. 또한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를 기록한 『난중일기』의 1,491일 분량 중 1,029일의 일기를 이곳에서 썼다.

운주당은 1597년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파직되고, 조선 수군이 칠천량(지금의 거제시)에서 왜군에 패하면서 폐허로 남게 되었다. 이후 1739년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조경(1677-1743)이 이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운주당의 옛터에 건물을 다시 짓고 ‘승리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내부에는 이순신의 전적을 그린 그림과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화포와 거북선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