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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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4년 4월 29일 (월) 10:2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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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동학농민혁명이란

조선 고종 31년(1894년)에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도와 농민들이 봉건체제를 개혁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전개했던 농민 중심의 혁명을 말한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에 대한 항거에서 시작되었으며, 후에 항일 의병투쟁과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생배경

19세기 세도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중앙정치의 기강 문란으로 삼정의 문란을 초래하였다. 지방관들의 농간과 매관매직의 성행으로 민중의 삶은 고통이 가중되어 갔다. 이로 인한 문중의 불만이 커지면서 봉건사회의 모순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주인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은 봉건통치 계급의 무자비한 착취와 외세 침략에 대항한 민중의 저항의식으로 발전되어 1892년경 전국적으로 농민봉기가 발생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

동학농민혁명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민중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건이다. 비록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으나 그들의 애국애족 정신은 훗날 일제시기의 항일운동을 비롯한 4․19혁명, 5․18광주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근간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평등사상과 자유민주화의 지평을 연 근대 민족사의 대사건이다.

동학농민혁명 연대기

  • 1894년 1월 10일 고부농민들 말목장터에서 봉기하여 고부관아 점령
  • 1894년 3월 20일 무장현 당산에서 창의문 낭독(무장기포)
  • 1894년 3월 26일 백산 결진 / 총대장-전봉준, 총관령-김개남, 손화중
  • 1894년 4월 7일 정읍 황토현에서 전라감영군 격파
  • 1894년 4월 27일 호남의 전주성 입성(전주성 점령)
  • 1894년 5월 8일 전주 화약 체결 / 농민 해산 및 집강소 설치 합의
  • 1894년 7월 6일 전주 회담 / 전라도 전지역 집강소 설치
  • 1894년 9월 10일 삼례에서 재봉기 준비
  • 1894년 10월 21일 전봉준과 손병희 농민군 논산에서 공주로 진격
  • 1894년 11월 9일 우금치 전투 / 농민군 패퇴
  • 1894년 11월 15일 논산 황화대에서 접전을 벌였으나 강경으로 패주
  • 1894년 11월 27일 태인전투를 끝으로 농민군 완전히 해산

전봉준(全琫準) 1855~1895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대표 인물로써 고부농민봉기를 주도하였으며 백산에서 농민군 총대장이 되었다. 농민군을 이끌고 전주성을 점령하고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를 설치하기로 하고 관민협치를 실현했다. 이후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재봉기를 결정하고 삼례에 대도소를 설치한다. 공주 우금치에서 대결전을 벌이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김개남(金開南) 1853~1894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백산에서 총관령이 되어 황토현전투와 황룡전투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전주성 점령에도 큰 역할을 한다. 재봉기 과정에서 공주로 진격하는 전봉준장군과 합류하지 않고 청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남하하여 후일을 도모하고자 했으나 체포되어 전주에서 생을 마감한다.

손화중(孫華仲) 1861~1895

동학교단의 대접주로써 전봉준장군과 함께 무장에서 기포한다. 백산에서 총관령이 되어 황토현전투와 황룡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재봉기 과정에서 일본군이 남해안으로 올 것을 대비하여 나주와 광주지역을 방어했다. 동학농민군이 패배하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 전봉준장군과 함께 생을 마감한다.

최경선(崔景善) ~ 1895

정읍시 북면 월천동에서 출생하여 1893년 11월 고부군민들의 사발통문 대표로 참여하여 다음해 정월 고부농민봉기를 이끌었다. 전봉준의 모주(제일모사)라 표현할 정도로 각별한 관계였다. 재봉기 과정에서 일본군이 나주해안으로 침입한다는 설이 있어 서울 진격에 참가하지 않고 손화중과 나주를 방어했다. 동학농민군 패배 후 서울로 압송되어 전봉준, 손화중장군과 함께 생을 마감한다.

영문

What is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was a nationwide uprising by Donghak followers and peasants aimed at reforming the feudal system and defending national sovereignty from foreign powers. It started as a local rebellion in 1894 when the magistrate of Gobu (present-day Jeongeup area) excessively exploited the peasants and escalated into a broader resistance movement. The revolution’s core principles significantly influenced subsequent anti-Japanese activities and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동학농민혁명의 발생배경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

동학농민혁명 연대기

전봉준(全琫準) 1855~1895

김개남(金開南) 1853~1894

손화중(孫華仲) 1861~1895

최경선(崔景善) ~ 1895

영문 해설 내용

동학농민혁명이란

동학농민혁명은 동학도와 농민들이 봉건 체제를 개혁하고 외세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개했던 전국적인 대규모 항쟁이다. 1894년 고부(지금의 정읍 지역)의 군수가 농민들을 과도하게 수탈함에 따라 농민군이 봉기하며 시작되었으며, 이 혁명의 기본 정신은 이후의 항일 의병 운동과 3·1 독립 만세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