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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공 순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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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1166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6월 18일 (금) 00:14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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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공 순의비
Stele of Jeong Un
정운공 순의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정운공 순의비
영문명칭 Stele of Jeong Un
한자 鄭運公 殉義碑
주소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1동 산144번지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0호
지정일 1972년 6월 26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정운공 순의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운공 순의비는 임진왜란 때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정운(鄭運, 1543~1592) 장군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정조 22년(1798) 정운의 8대손인 정혁이 다대포 첨사로 왔을 때 세운 것이다.

정운 장군의 본관은 하동이며, 영암에서 태어나 1570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로 출전할 것을 주장하여 옥포·당포·한산도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부산포 해전에서는 우부장(右副將)으로 출전하여 맨 앞에서 싸웠는데,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일본 군함 500척과 싸워 100여 척을 격파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비문에는 정운 장군이 수군 선봉으로 몰운대 아래에서 일본군을 만났을 때 몰운(沒雲)의 ‘운’ 자가 자기 이름의 ‘운(運)’과 음이 같다 하여 이곳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적혀 있다. 《충장공실기》와 《충무공전서》에는 정운이 부산포 해전에서 순절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충신 정공운 순의비(忠臣 鄭公運 殉義碑)’라는 8자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정운공의 순절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이조판서 민종현이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글자를 썼다고 한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으며, 1974년 부산시에서 비각*을 세워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 비각(碑閣): 후세에 역사적 업적을 전하기 위해 세운 비석을 보호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물.

영문

Stele of Jeong Un

This stele commemorates the military official Jeong Un (1543-1592), who heroically died in the Battle of Busan. The stele was erected in 1798 by Jeong Hyeok, the eighth-generation descendant of Jeong Un. The pavilion housing this stele was built in 1974.

Born in Yeongam, Jeong U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to become a military official in 1570 and served various posts. In 1591, he was given the post of army commander in the area of the present-day Goheung in Jeollanam-do Province. The next year, with the 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 he insisted on joining (or moving his troops to?) the military operations in Gyeongsang-do Province where he proved himself as an outstanding commander in the naval battles of Okpo, Dangpo, and Hansando Island. Jeong heroically died during the Battle of Busan when he fought the Japanese fleet as the vanguard commander under the command of Admiral Yi Sun-sin (1545-1598).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side of the stele reads “The stele of the loyal subject Jeong Un.” The inscription at the back records Jeong’s exploits. The text of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minister of personnel Min Jong-hyeon (1735-1798). According to this inscription, Jeong Un once fought the Japanese invaders near the place in Busan known as Morundae/Molundae Point. It was during that battle that Jeong decided that he would continue fighting until he meets his end. The original meaning of the name Morundae is “the place where the clouds vanish.” In the inscription, however, its meaning was interpreted as “the place of Jeong Un’s demise,” by replacing the character 'Un' meaning “cloud” with the homonymous character 'Un' used when writing Jeong Un's given name*.


  • I suppose this is what they mean?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임진왜란 때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무신 정운(1543-1592)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1798년 정운의 8대손 정혁이 세웠다. 비각은 1974년에 지은 것이다.

정운은 영암 출생으로 1570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고, 1591년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 지역의 군사를 통솔하게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로 출전할 것을 주장하여 옥포, 당포, 한산도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1545-1598)의 지휘 아래 선봉장으로 일본 군함에 맞서 싸우다가 부산포 앞바다에서 전사하였다.

비석의 앞면에는 '충신 정운의 비'라고 적혀 있고, 뒷면의 비문에는 정운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이조판서 민종현(1735-1798)이 지었다. 비문에 따르면 정운은 지금의 부산 몰운대 근처에서 일본군과 싸운 적이 있는데 이때 자신이 죽을 것을 각오했다고 한다. '몰운'이란 원래 '구름이 다하다, 구름이 걷히다'라는 뜻인데, '운'의 음이 같기 때문에 '정운이 죽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 '몰(沒)'은 vanish, disappear, die 등의 뜻으로 번역이 가능함. 원래 몰운대에서는 구름 운(雲)을 쓰지만 정운은 자신의 이름과 '운'이라는 음이 같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 것.
  • 비문에는 '정운이 몰운대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순절했다'고 기록하였지만, 다른 사료에 따르면 정운은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것이 맞음.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