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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토) 20:43 판


정열부인 영평정씨 열녀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Jeong Mak-geum
정열부인영평정씨열녀문.jpg
대표명칭 정열부인 영평정씨 열녀문
영문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Jeong Mak-geum
한자 貞烈夫人 永平鄭氏 烈女門
주소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 산196
지정번호 철원군 향토문화유산 2호



해설문

국문

정열부인 영평 정씨 열녀문은 청나라 군대에 희생된 정막금(鄭莫今)의 의리와 기개를 기리고자 인조 22년(1644)에 세운 것이다. 정막금은 영평 정씨 사람으로 김명천과 혼인하여 지금의 김화읍 도창리에 살았다. 한국 전쟁 때 중국군이 불태워 없어진 것을 1991년 10월 26일에 다시 세워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김화 지역의 자모 산성을 함락하고 도창리 마을에 들이닥쳤다. 김명천은 김화 지역 기병으로 종군하였으며 정막금은 가족들을 이끌고 삼신산 골짜기로 피신하였다. 이때 챙겨온 불씨가 꺼져 곤란해지자 정막금이 이를 구하기 위하여 다시 마을로 내려갔다. 정막금의 집은 이미 청나라 군대가 차지한 상태였다. 옛날 강원도 가옥에는 실내에서 불을 때어 조명과 난방을 해결하는 ‘고콜’이 있어서 정막금은 이곳에 치맛자락을 집어넣어 불씨를 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끝내 청나라 군대에 붙잡혀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정막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Jeong Mak-geum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인물인 정막금의 의리와 기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이다.

정막금은 영평정씨 사람으로 지금의 김화읍 도창리 지역에 살던 김해김씨 김명천의 아내였다. 1637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대가 인근의 산성을 함락하고 도창리 마을로 들이닥쳤다. 정막금은 시어머니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산골짜기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챙겨온 불씨가 꺼져, 다시 불씨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가 청나라 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적군에게 끝까지 항거하던 그녀는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44년 정막금의 행적을 기려 정려가 내려졌으며, 보호각을 세워 모셨다. 원래의 정려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1991년에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