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전상의 장군 예장석묘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2월 7일 (화) 20:40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전상의 장군 예장석묘
전상의 장군 예장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전상의 장군 예장석묘
한자 全尙毅 將軍 禮葬石墓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산239번지
지정번호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3호
지정일 1977년 10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전상의 장군 예장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중기의 무신인 전상의(全尙毅, 1575∼1627)의 묘이다. 전상의는 광주에서 태어나 29살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서북지방 요충지인 안주성을 방어하다 순절하였다. 3만의 대군 앞에서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결의에 감동한 후금은 “충신열사의 시신은 소중하게 모셔야 한다”고 하여 따로 무덤을 만들고 무덤 주인을 알리는 표를 세웠다고 한다.

정묘호란이 끝난 후 장군의 시신은 무등산 자락 평두산으로 옮겨 예장(禮葬)으로 장례를 지냈다. 예장은 국가에서 공신에게 베푸는 장례이다. 예장석묘는 전상의 장군과 부인인 풍천임씨가 함께 묻혀 있다. 묘 둘레는 21m이며 가장자리에는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1857년 세운 묘비와 새로 만들어진 무인석, 산양석 등이 있다.

예장석묘 입구인 화암마을에는 전상의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충민사(忠愍祠)가 조성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무신인 전상의(1575-1627)와 부인 풍천임씨의 합장묘이다.

전상의는 광주 출신으로, 1603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한반도 서북 지방 요충지인 안주성을 방어하다 전사하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전상의의 결의에 감동한 적군은 “충신열사의 시신은 소중하게 모셔야 한다”고 하여 따로 무덤을 만들고 무덤 주인을 알리는 표를 세웠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전상의의 시신은 이곳으로 옮겨져 장례를 지냈다. 묘 둘레는 21m이며 봉분 아래쪽에는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1857년에 세운 묘비와 새로 만들어진 무인석, 산양석 등이 있다.

묘가 위치한 화암마을에는 전상의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민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