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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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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0월 14일 (월) 13:23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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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지
전라감영지 발굴조사 보고서”,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 2018.
대표명칭 전라감영지
한자 全羅監營址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전주객사3길 7-1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107호
지정일 2000년 9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웹사이트 전라감영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전라감영은 조선 초부터 1896년까지 약 500년 동안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감사(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전라감영은 정문인 포정문(布政門),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宣化堂), 감사의 주거 공간인 연신당(燕申堂), 감사 가족의 처소인 내아(內衙), 누각인 관풍각(觀風閣) 등 건물이 모두 40여 채가 있었다. 1896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감영은 전라북도 도청의 행정업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감영 건물 대부분은 근대화 과정에서 없어지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화당도 1951년에 폭발 사고로 불타버렸다.

이곳은 조선시대 전라도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자치 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 대도소(大都所)가 설치된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2015년에 옛 도청 건물을 철거하고, 2017년부터 전라감영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선화당, 연신당, 내아, 관풍각 등을 복원하였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the Provincial Administration of Jeolla-do

This is the site of the provincial administration of Jeolla-do Province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Jeolla-do at the time included today's Jeollabuk-do and Jeollanam-do, as well as Jejudo Island.

The provincial administration of Jeolla-do originally consisted of 40 buildings including the main gate, the governor’s office, residential buildings, and a pavilion. It was the headquarters of the administration work for the Jeolla-do area. In 1894, when the Donghak Peasant Uprising began, the headquarters for the peasant armies’ network of autonomous directorates was located here. From 1896, it was used as the provincial office of Jeollabuk-do, which was established at the time.

However, most of the buildings were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governor’s office, which was the last building remaining, was burnt down in 1951 in an accidental explosion. Since 2017, reconstructions have begun to restore the governor’s office, residential buildings, and the pavilion.

영문 해설 내용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1896년까지 약 500년 동안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전라감영은 정문인 포정문,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관찰사와 가족의 주거 공간인 연신당과 내아, 누각인 관풍각 등 건물이 모두 40여 채가 있었다. 조선시대 전라도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농민군 자치 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영 건물 대부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없어지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화당도 1951년에 폭발 사고로 불타버렸다. 2017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선화당, 연신당, 내아, 관풍각 등을 다시 지었다.

참고

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