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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약사전 현왕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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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9일 (금) 00:20 판


전등사 약사전 현왕탱
0
전등사 약사전 현왕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전등사 약사전 현왕탱
영문명칭 0
한자 傳燈寺 藥師殿 現王幀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지정번호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3호
지정일 2002년 12월 23일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보살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폭
웹사이트 전등사 약사전 현왕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전등사 현왕탱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현왕탱과 달리 현왕 앞에 서안(書案)이 없어 현왕의 하체가 모두 드러나 있으며, 정면을 향하지 않고 비스듬히 앉아 있어서 장대한 현왕의 풍모가 잘 전달된다. 현왕 주위를 둘러싼 판관(判官)들은 독특한 의관을 착용한 채 주로 기다란 경책을 들고 있기도 하고, 두루마리에 판결을 쓰고 있으며, 이를 여러 권속들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두루마리 아래에는 머리를 쌍타원으로 딴 동자가 벼루를 들고 시종하고 있다. 현왕이 의자에 앉은 자세도 자연스럽고 판관들의 몸짓도 제각각으로 생동감이 있다. 그림 전체는 원형 구도를 사용하여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두루마리에 자연스럽게 모이게 하였다. 현왕과 판관들은 주로 금니(金泥)의 문양이 있는 붉은 포복을 입고 있는데, 바닥은 다른 현왕탱과 달리 회색의 농담을 달리해 마름모꼴의 무늬로 처리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약사전 불단 왼쪽(관람객 기준)에 자리하고 있는 이 그림은 사람이 죽은 지 3일이 된 망자를 심판하는 현왕과 권속들을 표현한 것이다.

화면 하단의 기록을 통해 1884년에 화승 동호당 진철과 긍법(肯法)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자에 앉아 오른쪽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현왕은 다른 권속들에 비해 크게 표현되었으며, 하체까지 모두 드러나 있다.

독특한 의관을 착용한 판관들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다양한 몸짓으로 현왕 주위를 둘러싸는 듯 배치되어 있으며, 판관 1인이 글씨를 쓰고 있는 두루마리 아래에는 벼루를 든 동자가 시종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원형 구도를 사용하여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왕 앞에 펼쳐진 두루마리로 모이도록 하였으며, 모든 존상들의 얼굴 방향과 자세 등이 저마다 다르게 되어 있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 원 안내문안의 ‘다른 현왕탱과는 달리’라는 표현을 최대한 배재하고자 하였음.
  • 의의 : 경상북도 의성 지장사(地藏寺) 현왕탱(1880년)과 동일한 초본을 사용했는데, 조선 말기 하나의 초본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사용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 탱화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 동호당 진철은 1880년대부터 경기도 일대,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 한국미술사 사전 1800-1945, 최열 저, 열화당, 2015 개정판 - 구글 검색으로 책 내용 확인.)

1차 수정

참고 자료

→그림 개관 확인

→그림의 의의 및 조성주체 명시

→약사전 내 배치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