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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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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당 長樂堂
Jangnakdang Hall
"장락당", 수원화성 테마관, 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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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 1794년(정조 18) 건립
  • 1997년 복원

1795년(정조 19) 혜경궁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이 머물 처소로 지었다. 이후 정조를 비롯하여 뒤를 이은 왕들은 화성에 내려오면 이 건물을 처소로 삼았다. 한나라의 고조가 모후를 위해 지은 장락궁에 연원을 둔 이름을 통해 정조 역시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려는 마음을 담았음을 알려준다. 봉수당과 장락당은 접해 있어서 서로 통할 수 있다.

건물은 정면 5칸에 전체 13칸 규모이며 온돌방이 8칸 마련되었다. 동・서・남쪽으로는 툇간을 두어 통행에 편하도록 했다. 온돌방은 매 칸 마다 겹겹이 장지문을 달아 아늑하게 하되 장지문을 모두 열어젖히면 실내가 트이도록 했다. 남쪽으로 복내당 사이에 무늬를 새긴 담장을 세우고 문 둘을 냈는데, 이름을 다복(多福)과 장복(長福)이라 해서 이름만으로도 복이 넘칠 듯한 분위기를 냈다.

국문 수정

장락당은 정조 19년(1795) 혜경궁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이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정조는 중국 한나라의 고조가 어머니를 위해 장락궁을 지은 것을 본받아 어머니 혜경궁을 위해 장락당을 지었다. 장락당과 봉수당은 접해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정조를 비롯하여 뒤를 이은 왕들이 화성에 내려오면 머무는 처소로도 사용되었다.

건물은 정면 5칸에 전체 13칸 규모이며, 삼면에 툇간을 두어 통행에 편하도록 했다. 온돌방은 매 칸 마다 겹겹이 장지문을 달아 아늑하게 만들었고, 장지문을 모두 열어젖히면 실내가 트이도록 했다. 장락당과 복내당 사이에 담장을 세우고 두 개의 문을 내고, 다복문(多福門)과 장복문(長福門)이라 이름 붙였다. 정조의 효심이 강조된 이름이다.

영문

Jangnakdang Hall

Jangnakdang was built in 1794 to be used as a hall for King Jeongjo’s mother when the king held his mother's 60th birthday at this temporary palace. It is located just behind Bongsudang Hall, which was used as the king's throne hall. These two buildings are connected to each other. Later, when Joseon kings visited this palace to offer rituals at Geolleung and Yungneung, the tombs of King Jeongjo and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they used this hall as a sleeping chamber. The name of this hall, “Jangnakdang (長樂堂),” means “hall for long-lasting happiness.”

영문 수정

Jangnakdang was built in 1794 to be used as a hall for King Jeongjo’s mother during her 60th birthday banquet here in 1795. It is connected to Bongsudang, the main hall. When Joseon kings visited this palace to offer rituals at the nearby tombs of King Jeongjo and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they used this hall as a sleeping chamber. The name of this hall, “Jangnakdang (長樂堂),” means “hall for long-lasting happiness.”

영문 해설 내용

장락당은 1794년에 지은 것으로,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거행하기로 계획한 후 어머니의 처소로 마련한 것이다. 왕의 정전으로 사용하던 봉수당의 바로 뒤에 있으며, 두 건물은 접해 있어서 서로 통할 수 있다. 이후 왕이 융릉과 건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행궁에 오면, 이곳을 숙소로 삼았다. 건물 이름은 오래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