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장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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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2월 22일 (토) 14:53 판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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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1795년(정조19) 혜경궁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거행하면서 혜경궁이 머물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국왕이 융릉과 건릉에 제사지내기 위해 화성에 내려오면 이 건물을 처소로 삼았다. 봉수당의 바로 뒤에 있으며 두 건물은 접해 있어서 서로 통할 수 있다. 봉수당은 본래 수원읍의 동헌으로 지어진 건물이므로 잠을 자거나 거처로 삼기에는 마땅치 않았고 수령의 거처인 복내당은 공간이 협소하여 왕의 거처로는 비좁고 옹색했다고 판단된다. 마침 혜경궁의 회갑연을 치르는 일이 생기면서 봉수당 바로 뒤에 혜경궁의 침소는 물론 향후 국왕이 행궁에 머물 때를 대비한 처소로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이다.

건물은 정면 5칸에 전체 13칸 규모이며 그 가운데 온돌방이 8칸 마련되었다. 동, 서, 남쪽으로는 퇴칸을 두어 통행에 편하도록 하고 실내 온돌방은 매 칸 마다 겹겹이 장지문을 달아 아늑하게 하되 장지문을 모두 열어젖히면 실내가 트이도록 했다. 남쪽으로 복내당 사이에 무늬를 새긴 담장을 세우고 문 둘을 냈는데, 이름을 다복(多福)과 장복(長福)이라 해서 이름만으로도 복이 넘칠 듯한 분위기를 냈다.

  • 연혁 - 1794년(정조18) 건립 / 2002년 복원
  • 구조 - 중층 문루 겹처마 팔작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장락당은 1794년에 지은 것으로,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거행하기로 계획한 후 어머니의 처소로 마련한 것이다. 왕의 정전으로 사용하던 봉수당의 바로 뒤에 있으며, 두 건물은 접해 있어서 서로 통할 수 있다. 이후 왕이 융릉과 건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행궁에 오면, 이곳을 숙소로 삼았다. 건물 이름은 오래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다.


1795년 정조 임금의 어머니 60세 생일잔치를 이곳에서 열면서 모친의 거처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잔치 때 왕이 어머니에게 술잔을 올리던 중심건물과 서로 통하도록 꾸몄다. 건물 이름은 오래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다. 국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이 곳을 숙소로 삼았다. 20세기 초에 건물이 철거되었다가 2002년 복원되었는데, 건물 곳곳에 많이 있었던 장식들은 다 살려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