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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동 한규설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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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동 한규설 가옥
Han Gyu-seol’s House from Janggyo-dong
장교동 한규설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장교동 한규설 가옥
영문명칭 Han Gyu-seol’s House from Janggyo-dong
한자 長橋洞 韓圭卨 家屋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855-2번지
지정번호 시도민속문화재 제7호
지정일 1977년 3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장교동 한규설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집은 18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대한제국 의정부 참정대신(총리)을 지낸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곳이다. 한규설은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이상재 등과 함께 조선교육회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원래 중구 장교동에 있던 집을 1980년 12월 20일 국민대학교로 옮겨 새로 지었는데, 이때 솟을대문, 좌우 행랑채, 중문간 행랑채와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을 나누는 사잇담 등을 새로 지어 원형을 찾았다.

이 집에는 대문채,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사당 등 여러 채가 있고, 각각에 맞추어 행랑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사당마당 등 마당도 나뉘어 있다. 이는 채와 마당이 짝을 이루는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정면에서 보면 반듯한 ㅡ자형인데, 뒤로 튀어나간 부분을 두어 외부는 단정하게 하고 내부는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툇마루를 집의 앞뒤로 설치하고 서양식 난방 방식을 도입하는 등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형식을 갖추면서도 실용성을 추구하여 변화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문

Han Gyu-seol’s House from Janggyo-dong


영문 해설 내용

대한제국의 정치가였던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집이다.

한규설은 조선 말기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905년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 집은 189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중구 장교동에 있었는데 1980년 12월 국민대학교에서 매입하여 교내로 옮겨지었다.

대문채,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마다 별도의 마당이 짝을 이루고 있다. 솟을대문, 행랑채, 건물 사이의 담장 등은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새로 지은 것이다. 보일러를 이용한 서양식 난방 방식을 도입하고 툇마루에 미닫이문을 설치하는 등 실용성을 추구한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