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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1890s. It was originally built in Janggyo-dong near Myeong-dong, but Kookmin University purchased the house and moved it to its campus in 1980.  
 
This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1890s. It was originally built in Janggyo-dong near Myeong-dong, but Kookmin University purchased the house and moved it to its campus in 1980.  
  
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uxiliary quarters, servants’ quarters, and shrine. Each quarters has its own courtyard. The gate, servants’ quarters and walls between the buildings were newly built when it was relocated to the current place. It features practical facilities, such as a modern heating system which uses a boiler. The house also has sliding windows which are not normally found i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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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uxiliary quarters, servants’ quarters, and shrine. Each quarters has its own courtyard. The gate, servants’ quarters, and walls between the buildings were newly built when it was relocated to the current place. It features practical facilities, such as a modern heating system which uses a boiler. The house also has sliding windows which are not normally found i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대한제국의 정치가였던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집이다.  
 
대한제국의 정치가였던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집이다.  
  
한규설은 조선 말기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905년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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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설은 19세기 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1905년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 집은 189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중구 장교동에 있었는데 1980년 12월 국민대학교에서 매입하여 교내로 옮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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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189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명동 인근인 장교동에 있었는데 1980년 국민대학교에서 매입하여 교내로 옮겨지었다.  
 
 
대문채,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마다 별도의 마당이 짝을 이루고 있다. 솟을대문, 행랑채, 건물 사이의 담장 등은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새로 지은 것이다. 보일러를 이용한 서양식 난방 방식을 도입하고 툇마루에 미닫이문을 설치하는 등 실용성을 추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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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채,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마다 별도의 마당이 짝을 이루고 있다. 솟을대문, 행랑채, 건물 사이의 담장 등은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새로 지은 것이다. 보일러를 이용한 현대식 난방 방식을 도입하여 실용성을 추구하였다. 미닫이문은 전통적인 한국 건축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것이다.
  
  

2019년 11월 20일 (수) 08:43 판


장교동 한규설 가옥
Han Gyu-seol’s House from Janggyo-dong
장교동 한규설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장교동 한규설 가옥
영문명칭 Han Gyu-seol’s House from Janggyo-dong
한자 長橋洞 韓圭卨 家屋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855-2번지
지정번호 시도민속문화재 제7호
지정일 1977년 3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장교동 한규설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집은 18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대한제국 의정부 참정대신(총리)을 지낸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곳이다. 한규설은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이상재 등과 함께 조선교육회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원래 중구 장교동에 있던 집을 1980년 12월 20일 국민대학교로 옮겨 새로 지었는데, 이때 솟을대문, 좌우 행랑채, 중문간 행랑채와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을 나누는 사잇담 등을 새로 지어 원형을 찾았다.

이 집에는 대문채,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사당 등 여러 채가 있고, 각각에 맞추어 행랑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사당마당 등 마당도 나뉘어 있다. 이는 채와 마당이 짝을 이루는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정면에서 보면 반듯한 ㅡ자형인데, 뒤로 튀어나간 부분을 두어 외부는 단정하게 하고 내부는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툇마루를 집의 앞뒤로 설치하고 서양식 난방 방식을 도입하는 등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형식을 갖추면서도 실용성을 추구하여 변화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문

Han Gyu-seol’s House from Janggyo-dong

This is the house of Han Gyu-seol (1848-1930), an influential politician of the Korean Empire (1897-1910).

Ha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but was dismissed for opposing the Japan-Korea Treaty of 1905.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he devoted himself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This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1890s. It was originally built in Janggyo-dong near Myeong-dong, but Kookmin University purchased the house and moved it to its campus in 1980.

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uxiliary quarters, servants’ quarters, and shrine. Each quarters has its own courtyard. The gate, servants’ quarters, and walls between the buildings were newly built when it was relocated to the current place. It features practical facilities, such as a modern heating system which uses a boiler. The house also has sliding windows which are not normally found i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영문 해설 내용

대한제국의 정치가였던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집이다.

한규설은 19세기 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1905년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 집은 189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명동 인근인 장교동에 있었는데 1980년 국민대학교에서 매입하여 교내로 옮겨지었다.

대문채,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마다 별도의 마당이 짝을 이루고 있다. 솟을대문, 행랑채, 건물 사이의 담장 등은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새로 지은 것이다. 보일러를 이용한 현대식 난방 방식을 도입하여 실용성을 추구하였다. 미닫이문은 전통적인 한국 건축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