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진구사지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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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진구사지 석등
Stone Lantern at Jingusa Temple Site, Imsil
"임실 진구사지 석등", 문화재현황, 임실군 문화관광.
대표명칭 임실 진구사지 석등
영문명칭 Stone Lantern at Jingusa Temple Site, Imsil
한자 任實 珍丘寺址 石燈
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734번지
지정번호 보물 제267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임실 진구사지 석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임실 진구사지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는 5.18m이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진구사’ 명문(銘文, 쇠붙이나 돌 또는 그릇 따위에 새겨 넣은 글) 기와가 출토되자 이전 명칭인 용암리사지 석등을 진구사지 석등으로 바꾸었다.

진구사는 7세기경 고구려계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이 창건한 이래 통일신라시대에는 열반종 사찰이었다가 고려시대에는 조계종 사찰에서 천태종 사찰로 바뀌었고, 조선 전기인 태종 7년(1407년)에는 88개의 자복사(資福寺, 국가의 복을 기원하는 절)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석등의 팔각 받침대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안상(眼象, 눈의 모양. 또는 눈처럼 생긴 모양)을 새기고, 그 위에 올린 연화대석(蓮花臺石, 돌로 만든 연꽃 문양의 조명 시설)에는 팔각으로 연화문을 새겼다. 석등의 끝에는 큼직한 귀꽃(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을 달아 장식하였다. 석등은 북 모양의 간주석(竿柱石, 석등의 기둥)을 사이에 두고 상대석의 앙련(仰蓮, 연꽃이 위로 향한 것처럼 그린 모양. 또는 그런 무늬)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또한 화사석(火舍石, 등불을 밝히도록 된 석등의 중간 부분) 위로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을 두었으며, 옥개석 추녀 끝에 큼직한 귀꽃을 세웠다. 석등은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이 섬세한 문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문

Stone Lantern of Jingusa Temple Site, Imsil

This stone lantern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between the 8th and 9th centuries. It is one of the largest stone lanterns in Korea, measuring 5.18 m in height.

Though its top part is partially missing, this stone lantern remains in its complete original form and is decorated with various exquisite patterns.

Initially, it was unknown which temple had been located at this site. However, through a series of excavations conducted from 1992 to 2001, roof tiles with the inscription of the temple’s name “Jingusa” were found from this site.

Jingusa Temple was founded in the 7th century and continued to influence the surrounding area for several hundred years. In 1407, it was designated by the royal court as one of the 88 regional temples for praying for the good of the country.

영문 해설 내용

이 석등은 8-9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높이는 5.18m로 한국에서 가장 큰 석등 중 하나이다.

상륜부의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거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섬세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 어느 사찰이 있었는지 알려지지 않아서, 이 사지는 오랫동안 지역 이름을 따서 불려왔다. 그러나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진구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

진구사는 7세기경 창건된 이래 몇백 년간 명찰로서의 사세를 이어왔다. 1407년에는 국가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각 지역의 88개 사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