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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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고택
Yi Tae-hyeong’s House
이태형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태형고택
영문명칭 Yi Tae-hyeong’s House
한자 李泰衡古宅
주소 경북 안동시 향교1길 27-33 (송천동)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호
지정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이태형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태형 고택은 고성 이씨 참판공파(叅判公派)의 종갓집으로, 이사악(李士岳, 1628~1714)의 증손자 이원보(李元輔, 1697~1738)가 1710년에 세웠다. 고성이씨는 이사악(李士岳)이 임동면 지례리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집의 이름은 31대손 이태형(李泰衡)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고택은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9년에 지례리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이 고택은 앞쪽의 ‘ㅡ’자형 사랑채와 뒤쪽의 ‘ㄷ’자형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가운데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대문 양옆에는 각각 고방과 사랑방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오른쪽에는 건넌방과 고방이 있다.

영문

Yi Tae-hyeong’s House

This house was built in 1710 by Yi Won-bo (1697-1738), the great-grandson of Yi Sa-ak (1628-1714) who was the first person of the Goseong Yi clan to settle in Jirye-ri, thus founding the Champangong Branch of the clan. The house is named after one of Yi Won-bo’s descendants who owned the house.

The house was originally located in Jirye-ri bu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89 due to the construction of Imha Dam. It consists of a men’s quarters and women’s quarters which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center. The men’s quarters consists of a gate leading to the women’s quarters in the center with a storage room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ither side. The wo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with a kitchen and main underfloor-heated room to the left, and a secondary underfloor-heated room and a storage room to the right. There is also a shrine used for ancestral worship rituals.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고성이씨 참판공파(叅判公派)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고성이씨는 이사악(李士岳, 1628~1714)이 임동면 지례리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이 집은 이사악의 증손자 이원보(李元輔, 1697~1738)가 1710년에 건립하였고, 집의 이름은 31대손 이태형(李泰衡)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9년에 지례리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앞쪽의 ‘ㅡ’자형 사랑채와 뒤쪽의 ‘ㄷ’자형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가운데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대문 양옆에는 각각 고방과 사랑방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오른쪽에는 건넌방과 고방이 있다.

참고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입향조가 이후장으로 되어 있고, 기존 국문에는 이사악으로 되어 있다. 족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입향조에 대한 기록은 나와 있지 않지만, 이사악의 배우자가 의성김씨인 점과 의성김씨 문중에서 묘갈명을 찬술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사악 대에 안동지역으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사악의 아들 이후장의 배우자는 안동김씨인데 안동지역으로 이주해 온 뒤 지역 유력가문과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증손자인 이원보도 마찬가지로 안동김씨 집안과 혼인하였다.

기존 국문에 고성이씨 후평파라고 되어 있는데 고성이씨 파 가운데 후평파는 없고, 이사악, 이후장, 이원보, 이태형 모두 참판공파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