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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3일 (금) 15:36 기준 최신판

이천보 고가
Yi Cheon-bo’s House
이천보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천보 고가
영문명칭 Yi Cheon-bo’s House
한자 李天輔 古家
주소 경기도 가평군 역촌길 84-14(연하리)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55호
지정일 1984년 9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이천보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천보 고가는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가 살았던 집으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정면의 사랑채와 오른쪽의 행랑채이다.

사랑채는 동쪽을 향해 있으며, 경기 지방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 자형으로 지어졌다. 왼쪽부터 높게 만든 마루인 누마루, 방, 대청, 방, 부엌 순으로 정면 6칸 옆면 1칸 반의 규모이다. 특히 누마루 쪽의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부엌 쪽은 맞배지붕으로 서로 다른데 연이어 두 건물이 있는 경우에 보이는 형식이기도 하다. 대청 위를 받치는 도리에 「동치육년(同治六年)」이라 적힌 상량문으로 보아 고종 4년(1867년)에 고쳐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행랑채는 지금 담장 밖에 있던 것을 19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1칸을 늘려 지었다.

이천보 고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순사들이 머무르던 주재소로 사용되었고,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사령부로 쓰였다.

사랑채 뒤쪽으로 가문의 선조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으며 고가 오른쪽으로 1975년 김포에서 이장(移葬)한 묘와 석물이 있다.

영문

Yi Cheon-bo’s House

This is the former residence of Yi Cheon-bo (1698-1761),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i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739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was promoted to the chief state councilor, the highest government position, in 1761.

The original buildings of Yi Cheon-bo’s house were destroyed and were reconstructed in 1867. The house was used as a substation of the Japanese poli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nd as a headquarters of the North Korean Army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women’s quarters were burned down during the Korean War, and currently, men’s quarters and servants’ quarters remain. The servants’ quarters was originally located outside the gate, but was moved inside in 1975.

The men’s quarters include, from the left, an elevated wooden porch, underfloor-heated room, wooden-floored hall, another underfloor-heated room, and kitchen. Its roof shows a unique design, which is a hip and gable roof on the left and a gable roof on the right.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 문신인 이천보가 살았던 집이다. 이천보는 1739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1761년에는 최고위 관직인 영의정에 올랐다.

이천보가 살던 집의 원래 건물들은 모두 소실되었고 1867년에 다시 지어졌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순사들이 머무르던 주재소로 사용되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사령부로 쓰였다. 안채는 한국전쟁 중에 불에 타 없어졌고, 지금은 사랑채와 행랑채만 남았다. 행랑채는 원래 대문 밖에 있었는데, 1975년에 안쪽으로 옮겼다.

사랑채는 왼쪽에서부터 누마루, 온돌방, 대청, 온돌방,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왼쪽은 팔작지붕이고 오른쪽은 맞배지붕으로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