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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종무장군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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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100250000 이종무장군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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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Tomb of General Yi Jong-mu
 
|한자=李從茂將軍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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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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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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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장인 이종무(1360-1425) 장군의 묘소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던 장군은 고려 우왕 7년(1381) 20살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로 나가서 왜구를 격파하고 그 공으로 벼슬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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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장군 묘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인 이종무(李從茂, 1360~1425) 장군의 묘소로, 부인 평양조씨와 합장되어 있다.
  
조선 태조 6년(1357) 서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쳐 첨절제사에 올랐으며, 그 뒤 통원군·의주병마절제사·우군총제 등의 자리에 올랐다. 세종 1년(1419) 왜구의 침입이 더욱 심해지자 조정에서는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장군은 전함 227척, 군사 1만 7,000여명을 거느리고 대마도를 공략해 항복을 받고 돌아왔다. 대마도는 우리나라와 거리가 제일 가까운 일본의 영토로, 이종무에 의해 한때나마 우리나라의 땅이 될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국력을 과시한 일이 되었다. 봉분의 앞면과 좌우면에는 직사각형의 돌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다. 양옆으로는 문인석1쌍이 배열되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후대에 새로 세운 묘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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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는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우왕 7년(1381)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관직에 올랐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며, 1400년에는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 아들 간의 권력 다툼인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조선 태종 1년(1401)에 이저(李佇), 이거이(李居易) 등 46명에게 내린 훈명. 정종 2년(1400) 제이 차 왕자의 난 때 박포 등의 무리를 평정하고 태종을 임금 자리에 오르게 한 공로로 주어졌다.)이 되었다. 조선 세종 1년(1419)에는 왜구의 주요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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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은 앞면과 옆면에 ‘ㄷ’자 형태로 돌을 둘렀으며, 석물(石物: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로는 손이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모습의 문인석(文人石: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1쌍이 조선 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묘비는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1975년에 묘역 오른쪽에 새 비석을 세웠으며, 상석(床石: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과 향로석(香爐石: 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은 2000년대 이후 새로 설치하였다.  
====초고====
 
고려 말-조선 초기의 무신인 이종무(李從茂, 1360~1425) 장군의 묘소로, 부인 평양 조씨와 합장한 묘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했다고 전해지며, 1381년(고려 우왕 7) 20살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로 나가서 왜구를 격파하고 그 공으로 관직에 올랐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역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며, 1400년에는 태조 이성계(1335~1408)의 왕자들 간의 권력 다툼인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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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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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 of General Yi Jong-mu'''
  
그의 전공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대마도 정벌이다. 1419년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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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tomb of Yi Jong-mu (1360-1425), a military official from the tur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His wife, Lady Jo, is buried together with him in the tomb mound.  
  
그의 봉분에는 앞과 양쪽에 직사각형의 병풍돌을 둘렀고, 그 앞에는 2000년대 이후 새로 설치한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다. 묘역의 좌측에 세워진 묘비는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1975년에 새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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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Yi is said to have been talented in archery and horse riding from his youth. In 1381, he followed his father to battle against the Japanese pirates and defeated them. For his service, he was awarded an official post.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dynasty, he continued to defend against Japanese pirates. He also helped settle matters during a fight for power among the Joseon princes in 1400. For this,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a meritorious subject. In 1419, he attacked Tsushima Island to subdue the Japanese pirates who used the island as their base.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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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ront of the tomb mound, there is a tombstone,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 stone table, and an incense table. The two tables were newly made in the 2000s. Due to the severe erosion of the tombstone, the epitaph became illegible. In 1975, a new tombstone was erected to the right of the tomb mound.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인 이종무(李從茂, 1360~1425) 장군의 묘소로, 부인 평양조씨와 합장한 묘이다.  
 
  
이종무는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다고 전해지며, 1381년 20살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관직에 올랐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역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며, 1400년에는 태조 이성계(1335~1408)의 왕자들 간의 권력 다툼인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다. 1419년에는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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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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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인 이종무(1360~1425) 장군의 묘소로, 부인 평양조씨와 합장한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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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는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다고 전해진다. 1381년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관직에 올랐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며, 1400년에는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의 왕자들 간의 권력 다툼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다. 1419년에는 왜구의 주요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봉분 앞의 석물로는 묘비, 문인석 1쌍, 상석, 향로석이 있는데, 상석과 향로석은 2000년대 이후에 새로 설치한 것이다. 묘비는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1975년 묘역 오른쪽에 새 비석을 세웠다.
 
봉분 앞의 석물로는 묘비, 문인석 1쌍, 상석, 향로석이 있는데, 상석과 향로석은 2000년대 이후에 새로 설치한 것이다. 묘비는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1975년 묘역 오른쪽에 새 비석을 세웠다.

2020년 6월 11일 (목) 08:01 판

이종무장군묘
Tomb of General Yi Jong-mu
이종무장군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종무장군묘
영문명칭 Tomb of General Yi Jong-mu
한자 李從茂將軍墓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번지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25호
지정일 1975년 9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이종무장군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종무 장군 묘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인 이종무(李從茂, 1360~1425) 장군의 묘소로, 부인 평양조씨와 합장되어 있다.

이종무는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우왕 7년(1381)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관직에 올랐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며, 1400년에는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 아들 간의 권력 다툼인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조선 태종 1년(1401)에 이저(李佇), 이거이(李居易) 등 46명에게 내린 훈명. 정종 2년(1400) 제이 차 왕자의 난 때 박포 등의 무리를 평정하고 태종을 임금 자리에 오르게 한 공로로 주어졌다.)이 되었다. 조선 세종 1년(1419)에는 왜구의 주요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봉분은 앞면과 옆면에 ‘ㄷ’자 형태로 돌을 둘렀으며, 석물(石物: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로는 손이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모습의 문인석(文人石: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1쌍이 조선 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묘비는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1975년에 묘역 오른쪽에 새 비석을 세웠으며, 상석(床石: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과 향로석(香爐石: 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은 2000년대 이후 새로 설치하였다.

영문

Tomb of General Yi Jong-mu

This is the tomb of Yi Jong-mu (1360-1425), a military official from the tur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His wife, Lady Jo, is buried together with him in the tomb mound.

General Yi is said to have been talented in archery and horse riding from his youth. In 1381, he followed his father to battle against the Japanese pirates and defeated them. For his service, he was awarded an official post.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dynasty, he continued to defend against Japanese pirates. He also helped settle matters during a fight for power among the Joseon princes in 1400. For this,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a meritorious subject. In 1419, he attacked Tsushima Island to subdue the Japanese pirates who used the island as their base.

In front of the tomb mound, there is a tombstone,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 stone table, and an incense table. The two tables were newly made in the 2000s. Due to the severe erosion of the tombstone, the epitaph became illegible. In 1975, a new tombstone was erected to the right of the tomb mound.

영문 해설 내용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인 이종무(1360~1425) 장군의 묘소로, 부인 평양조씨와 합장한 묘이다.

이종무는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다고 전해진다. 1381년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관직에 올랐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며, 1400년에는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의 왕자들 간의 권력 다툼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다. 1419년에는 왜구의 주요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봉분 앞의 석물로는 묘비, 문인석 1쌍, 상석, 향로석이 있는데, 상석과 향로석은 2000년대 이후에 새로 설치한 것이다. 묘비는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1975년 묘역 오른쪽에 새 비석을 세웠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이종무장군묘(李從茂將軍墓) 문화유산 이종무장군묘(李從茂將軍墓)
이종무 인물 이종무 1360~1425
제2차 왕자의 난 사건 제2차 왕자의 난 1400년
좌명공신(佐命功臣) 개념 좌명공신(佐命功臣)
대마도 정벌 사건 대마도 정벌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이종무장군묘 이종무 ~의 묘소이다.
제2차 왕자의 난 이종무 ~와 관계가 있다.
좌명공신(佐命功臣) 이종무 ~와 관계가 있다.
대마도 정벌 이종무 ~와 관계가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