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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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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있던 장소나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나 다듬어진 석재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위치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원래 있던 장소나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나 다듬어진 석재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위치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사암질의 돌에 조각되었다. 전체적인 크기에 비해 머리, 손, 발이 크다. 머리는 떨어져 나갔던 것을 다시 붙여 놓았다. 왼손 손바닥 위에 커다란 약그릇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고 여겨지는 약사여래불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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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사암질의 돌에 조각되었다. 전체적인 크기에 비해 머리, 손, 발이 크다. 머리는 떨어져 나갔던 것을 다시 붙여 놓았다. 왼손 손바닥 위에 커다란 약그릇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불로 여겨진다.
  
  

2020년 1월 19일 (일) 07:19 판


의성 내산리 석불좌상
Stone Seated Buddha in Naesan-ri, Uiseong
의성 내산리 석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의성 내산리 석불좌상
영문명칭 Stone Seated Buddha in Naesan-ri, Uiseong
한자 義城 內山里 石佛坐像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내산리 산25번지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305호
지정일 1995년 6월 19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의성 내산리 석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부처의 모습을 나타낸 것을 불상이라 하는데, 이 불상이 서 있는 모습이면 입상, 앉은 모습이면 좌상이라 부른다.

내산리 석불 좌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집을 지어 관리하다가 지금은 헐어내고 바깥에 있는 큰 바위 위에 높게 단을 만들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두었다. 원래 있었던 장소나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지만 주변에 기와조각이 많고 다듬어진 돌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지금의 위치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내산리 석불 좌상은 사암질*의 돌에 조각되었다. 머리와 손, 발 등이 크게 표현되어 있어 균형감이 떨어지고 조각 수법도 거칠고 투박하다. 어깨도 좁게 움츠려져 있으며, 법의의 옷 주름은 전체적으로 굵고 같은 간격으로 되어 있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의성 지역의 영향을 받아 모양이나 형식이 변한 약사여래불**로 추정한다.


  • 사암: 모래가 뭉쳐서 단단히 굳어진 암석.
  • 약사여래불: 열두 가지 소원을 세워 중생의 질병 구제, 수명 연장, 재화 소멸, 의식(衣食) 만족을 이루어 주며,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부처.

영문

Stone Seated Buddha in Naesan-ri, Uiseong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있던 장소나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나 다듬어진 석재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위치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사암질의 돌에 조각되었다. 전체적인 크기에 비해 머리, 손, 발이 크다. 머리는 떨어져 나갔던 것을 다시 붙여 놓았다. 왼손 손바닥 위에 커다란 약그릇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불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