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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성지 김가항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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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성지 김가항 성당
Gimgahang Catholic Church of Euni Holy Ground
대표명칭 은이성지 김가항 성당
영문명칭 Gimgahang Catholic Church of Euni Holy Ground
한자 隱里聖地 金家巷 聖堂
지정번호 용인시 향토유적 제71호
분류 소유자=



해설문

국문

은이성지 김가항 성당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사제 서품을 받은 상해의 성당을 복원한 건축물이다.

은이성지 일대는 1890년대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교우촌을 이루고 있었다. 소년 김대건의 일가도 골배마실에 터를 잡고 살면서 신앙 활동을 하였다. 김대건은 선교를 위해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떠났고, 신학 과정을 마친 후 부제품(副祭品: 신품 성사의 첫째 단계 품으로 주교와 사제를 도와 말씀과 제단, 자선 사업 따위에 봉사하는 직품.)을 받았다.

이후 1845년 8월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조선인 최초의 사제로서 이곳 은이공소에 도착한 1845년 11월부터 선교사 입국로 개척을 위해 다시 떠난 1846년 5월까지 은이를 중심으로 서울과 용인 일대에서 사목 활동을 하였다.

김가항 성당은 17세기 중반 중국 상해의 김가항에 민가 건축을 개조해 만든 성당이다. 1841년에는 남경교구의 중심이었으나 2001년 상해 정부의 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되었다. 수원교구는 철거 직전, 성당에 대한 실측을 실시하고 기둥과 대들보 등 일부 부재를 가져와 2016년 이곳에 복원하였다.

영문

Gimgahang Catholic Church of Euni Holy Ground


영문 해설 내용

김가항 성당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1821-1846) 신부가 1845년 8월 사제 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의 성당을 옮겨 와 지은 건축물이다.

성당이 위치한 지역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숨어살기 시작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이 교우촌은 은이마을이라고 불렸는데, '숨겨진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김대건도 소년 시절 인근 골배마을에 터를 잡고 살면서 신앙 활동을 하였다.

이후 김대건은 선교를 위해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Pierre Philibert Maubant, 1803-1839)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되었고, 1837년 마카오로 떠나 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이후 1845년 8월 상하이에 있던 김가항성당에서 페레올 주교(Jean-Joseph-Jean-Baptiste Ferréol, 1808-1853)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김대건은 조선인 최초의 사제로서 이곳 은이마을 공소에 도착한 1845년 11월부터 선교사 입국로 개척을 위해 다시 떠난 1846년 5월까지 은이를 중심으로 서울과 용인 일대에서 사목 활동을 하였다.

김가항 성당은 17세기 중반 중국 상하이의 항구인 김가항에 지어졌다. 1841년에는 중국 천주교 남경교구의 중심이었으나 2001년 상하이 정부의 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되었다. 한국 천주교 수원교구는 철거 직전, 성당에 대한 실측을 실시하고 기둥과 대들보 등 일부 부재를 가져와 2016년 이곳에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