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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인 진공대사(869-94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이러한 탑비는 스님의 사후에 사리나 유골을 모신 승탑과 함께 조성된다. 비신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흥법사지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있다.
 
이 비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인 진공대사(869-94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이러한 탑비는 스님의 사후에 사리나 유골을 모신 승탑과 함께 조성된다. 비신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흥법사지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있다.
  
진공대사는 경주 출신으로 그의 선조는 신라의 귀족이었다. 889년에 계를 받았고,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918년 귀국하였으며, 이후 고려 태조가 충담을 왕사로 책봉하였다. 왕명으로 원주 흥법사에 주지하였으며 940년에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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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대사는 경주 출신으로 그의 선조는 신라의 귀족이었다. 889년에 계를 받았고,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918년 귀국하였으며, 이후 고려 태조가 왕사로 책봉하였다. 왕명으로 원주 흥법사에 주지하였으며 940년에 입적하였다.  
  
진공대사의 탑비는 대사가 입적한 같은 해에 세워졌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임진왜란 때 파손되었다. 비문은 태조가 직접 지은 것으로, 지광국사의 출생부터 입적까지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글씨는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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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대사의 탑비는 대사가 입적한 같은 해에 세워졌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임진왜란 때 파손되었다. 비문은 태조가 직접 지은 것으로, 진공대사의 출생부터 입적까지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글씨는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받침돌의 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머릿돌의 중앙 사각형에는 ‘진공대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주변에는 구름과 용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섬세한 조각 솜씨가 당시의 높은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받침돌의 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머릿돌의 중앙 사각형에는 ‘진공대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주변에는 구름과 용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섬세한 조각 솜씨가 당시의 높은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2019년 10월 22일 (화) 14:27 기준 최신판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Stele of Buddhist Monk Jingong at Heungbeopsa Temple Site, Wonju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영문명칭 Stele of Buddhist Monk Jingong at Heungbeopsa Temple Site, Wonju
한자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지정번호 보물 제463호
지정일 1968년 7월 5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귀부이수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비는 태조 24년(941) 진공대사 충담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진공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로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고려 태조의 왕사(王師)*가 되었고, 흥법사에 머물다가 태조 23년(940)에 입적**하였다. 태조 왕건이 직접 비문을 지을 정도로 진공대사는 당대의 존경받는 고승이자 나라의 정신적 지주였다.

탑비의 받침 부분인 귀부(龜趺)는 용에 가까운 모습으로,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등에는 이중의 육각형이 새겨져 있는데, 그 안에 ‘만卍’자와 연꽃무늬가 있다. 비의 덮개 부분인 이수(螭首)의 앞면 중앙에는 ‘진공대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휘젓는 용이 조각되어 있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이 당시의 높은 예술 수준을 보여 준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임진왜란 때 파손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왕사(王師): 왕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라는 뜻으로, 지덕이 높은 승려에게 내리던 칭호. 국사보다 한 단계 낮다.
  • 입적(入寂): 열반에 들었다는 뜻으로,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영문

Stele of Buddhist Monk Jingong at Heungbeopsa Temple Site, Wonju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Jingong (869-940), an eminent Buddhist monk at the turn of the Unified Silla (668-935) and Goryeo (918-1392) periods. After a monk's death, a stupa, which contains his remains, and a stele were erected in his honor. The body stone is currently kept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only the pedestal and capstone remain at Heungbeopsa Temple Site.

Jingong was born in today’s Gyeongju area, and his ancestors were aristocrats of the Silla kingdom. He was ordained in 889 and then studied in Tang China. He came back in 918, and King Taejo (r. 918-943) of the Goryeo dynasty appointed him as a royal preceptor. Later, he stayed in Heungbeopsa Temple by a royal order until his death in 940.

His stele was erected in the year of his death. The body stone was severely damag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t has an inscription recording Jingong’s life composed by King Taejo, and the characters carved on the stele are copies of calligraphy by Emperor Taizong of Tang.

The tortoise-shape pedestal features a dragon head with a wish-fulfilling jewel in its mouth. At the center of the capstone is a square bearing the name of Jingong, which is surrounded with two dragons and cloud designs. The exquisite carvings on the pedestal and capstone attest to the excellence of styles and techniques of that period.

The stupa of Buddhist Monk Jingong (Treasure No. 365) is now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인 진공대사(869-94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이러한 탑비는 스님의 사후에 사리나 유골을 모신 승탑과 함께 조성된다. 비신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흥법사지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있다.

진공대사는 경주 출신으로 그의 선조는 신라의 귀족이었다. 889년에 계를 받았고,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918년 귀국하였으며, 이후 고려 태조가 왕사로 책봉하였다. 왕명으로 원주 흥법사에 주지하였으며 940년에 입적하였다.

진공대사의 탑비는 대사가 입적한 같은 해에 세워졌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임진왜란 때 파손되었다. 비문은 태조가 직접 지은 것으로, 진공대사의 출생부터 입적까지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글씨는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받침돌의 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머릿돌의 중앙 사각형에는 ‘진공대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주변에는 구름과 용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섬세한 조각 솜씨가 당시의 높은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진공대사의 승탑(보물 제365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