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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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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지광국사 해린(海麟)은 원주 출신의 승려로, 문종 10년(1056)에 왕사(王師)*로 추대되고, 문종 12년(1058)에는 국사(國師)**에 오른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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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의 앞면에는 지광국사가 성종 3년(984)에 태어났고 이름은 원해린이며, 16세에 스님이 되어 승통·왕사·국사의 칭호를 받고 문종 21년(1067)에 84세의 나이로 이곳 법천사에서 돌아가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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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거북의 등에 새겨진 왕(王)자, 왕관 모양의 머릿돌에 새겨진 연꽃잎 무늬와 구름 속의 용, 탑비의 몸돌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연꽃·구름·용 등은 당시 조각 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탑비 몸돌 양 옆면에 새겨진 구름 속 용 두 마리의 역동성이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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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王師): 왕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라는 뜻으로, 지덕이 높은 승려에게 내리던 칭호, 국사보다 한 단계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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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國師):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라는 뜻으로, 지덕이 높은 승려에게 내리던 칭호. 가장 높은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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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국문===
 
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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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 우리나라 천태종의 창시자. 시호는 대각 국사.
 
*의천: 우리나라 천태종의 창시자. 시호는 대각 국사.
*입적入寂: 열반에 들었다는 뜻으로,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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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入寂): 열반에 들었다는 뜻으로,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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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3161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처: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3161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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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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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 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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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8살의 나이에 출가하여, 21세에 승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문종까지 여러 왕을 거치면서 최고의 승려로 활약하였다. 역대 왕들은 자주 지광국사를 왕실로 초청해 말씀을 들었고, 임금과 함께 국왕의 수레인 어가를 타고 다녔다. 특히 문종은 지광국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극진하게 대접하였다. 지광국사는 문종 24년(1070)에 87세의 나이로 법천사에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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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국사 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받침돌에 있는 거북의 얼굴은 용의 얼굴과 비슷하다. 특히 등껍질에 사각형을 여러 개 그리고 그 안에 왕(王) 자를 새겨 장식한 점이 독특하다. 탑비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연꽃·구름·용 등은 당시 조각 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 준다. 특히, 몸돌 양 옆면에 구름과 어우러지게 새겨진 용 두 마리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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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入寂): 열반에 들었다는 뜻으로,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영문===
 
===영문===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State Preceptor Jigwang (984-107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A monk’s stele was made after his death with a stupa containing his relics or rem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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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e of State Preceptor Jigwang at Beopcheonsa Temple Site, Wo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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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State Preceptor Jigwang (984-107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After a monk's death, a stupa, which contains his remains, and a stele were erected in his honor.  
  
Born in Wonju, Jigwang became a monk at Beopcheonsa Temple in 991 and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for monks in 1004. He served as abbots for several temples and was invited by King Munjong (r. 1046-1083) to give lectures in the royal court. In 1054, he was appointed as the abbot of Hyeonhwasa, a temple in Goryeo’s capital Gaeseong (in today’s North Korea), and oversaw a large-scale expansion of the temple with the support of the royal court. He was promoted to a royal preceptor in 1056 and a state preceptor, which was the highest position of monks, in 1058. In 1067, he retired and went back to Beopcheonsa Temple where he died in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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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in Wonju, Jigwang became a monk at Beopcheonsa Temple in 991 and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for monks in 1004. He served as an abbot for several temples and was invited by King Munjong (r. 1046-1083) to give lectures in the royal court. In 1054, he was appointed as the abbot of Hyeonhwasa, a temple in Goryeo’s capital, Gaeseong (in today’s North Korea), and oversaw a large-scale expansion of the temple with the support of the royal court. He was promoted to a royal preceptor in 1056 and a state preceptor, which was the highest position of monks, in 1058. In 1067, he retired and returned to Beopcheonsa Temple where he died in 1070.
  
His stele was erected in 1085.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records his life in details, from birth to death, and the other inscription on the back lists the name of his followers which amounts to nearly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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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stele was erected in 1085.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records his life in detail, from birth to death, and the inscription on the back lists the names of his nearly 1,400 followers.
  
The tortoise-shaped pedestal, crown-shaped capstone, and the stele body are exquisitely carved with diverse patterns such as lotus flowers, clouds, and dragons, showing the excellence of styles and techniques of that period. The stele is 4.55 m in h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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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rtoise-shaped pedestal, crown-shaped capstone, and stele body are exquisitely carved with diverse patterns such as lotus flowers, clouds, and dragons, showing the excellence of styles and techniques of that period. The stele is 4.55 m in height.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2019년 10월 29일 (화) 16:17 기준 최신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Stele of State Preceptor Jigwang at Beopcheonsa Temple Site, Wonju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영문명칭 Stele of State Preceptor Jigwang at Beopcheonsa Temple Site, Wonju
한자 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碑
주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629
지정번호 국보 제59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지광국사 해린(海麟)은 원주 출신의 승려로, 문종 10년(1056)에 왕사(王師)*로 추대되고, 문종 12년(1058)에는 국사(國師)**에 오른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다.

탑비의 앞면에는 지광국사가 성종 3년(984)에 태어났고 이름은 원해린이며, 16세에 스님이 되어 승통·왕사·국사의 칭호를 받고 문종 21년(1067)에 84세의 나이로 이곳 법천사에서 돌아가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거북의 등에 새겨진 왕(王)자, 왕관 모양의 머릿돌에 새겨진 연꽃잎 무늬와 구름 속의 용, 탑비의 몸돌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연꽃·구름·용 등은 당시 조각 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탑비 몸돌 양 옆면에 새겨진 구름 속 용 두 마리의 역동성이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왕사(王師): 왕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라는 뜻으로, 지덕이 높은 승려에게 내리던 칭호, 국사보다 한 단계 낮다.
  • 국사(國師):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라는 뜻으로, 지덕이 높은 승려에게 내리던 칭호. 가장 높은 단계이다.

수정 국문

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8살의 나이에 출가하여, 21세에 승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성종에서 문종에 이르는 다섯 왕을 거치면서 최고의 승려로 활약하였다. 역대 왕들은 자주 지광국사를 왕실로 초청해 말씀을 들었고, 임금과 함께 국왕의 수레인 어가를 타고 다녔다. 특히 문종은 지광국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의 넷째 아들 의천*을 출가시켜 지광국사가 주지로 있던 현화사에 머물게 했다. 지광국사는 문종 21년(1067)에 84세의 나이로 법천사에서 입적**하였다.

지광국사 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받침돌에 있는 거북의 얼굴은 용의 얼굴과 비슷하다. 특히 등껍질에 사각형을 여러 개 그리고 그 안에 왕(王) 자를 새겨 장식한 점이 독특하다. 탑비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연꽃·구름·용 등은 당시 조각 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 준다. 특히, 몸돌 양 옆면에 구름과 어우러지게 새겨진 용 두 마리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 의천: 우리나라 천태종의 창시자. 시호는 대각 국사.
  • 입적(入寂): 열반에 들었다는 뜻으로,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1. 성종부터 문종까지는 여섯 왕입니다. (성종-목종-현종-덕종-정종-문종)
    • 성종의 재위 시기가 981-997년인데, 지광국사가 구족계를 받은 것이 999년입니다. 따라서 성종에서 문종까지 다섯 왕을 거쳤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2. 현화사로 출가한 문종의 아들은 왕탱(王竀)입니다.
    • 출처: 고려사 세가 권제8, 문종(文宗) 24년, 5월 13일 “왕자 탱이 승려가 되다
    • 의천은 1065년에 영통사로 출가합니다. 지광국사는 법상종 승려이고, 의천은 화엄종, 천태종 승려이기 때문에 교단도 다릅니다.
  3. 지광국사는 1070년 87세의 나이로 입적했습니다.

최종 국문

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 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8살의 나이에 출가하여, 21세에 승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문종까지 여러 왕을 거치면서 최고의 승려로 활약하였다. 역대 왕들은 자주 지광국사를 왕실로 초청해 말씀을 들었고, 임금과 함께 국왕의 수레인 어가를 타고 다녔다. 특히 문종은 지광국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극진하게 대접하였다. 지광국사는 문종 24년(1070)에 87세의 나이로 법천사에서 입적*하였다.

지광국사 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받침돌에 있는 거북의 얼굴은 용의 얼굴과 비슷하다. 특히 등껍질에 사각형을 여러 개 그리고 그 안에 왕(王) 자를 새겨 장식한 점이 독특하다. 탑비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연꽃·구름·용 등은 당시 조각 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 준다. 특히, 몸돌 양 옆면에 구름과 어우러지게 새겨진 용 두 마리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 입적(入寂): 열반에 들었다는 뜻으로,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영문

Stele of State Preceptor Jigwang at Beopcheonsa Temple Site, Wonju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State Preceptor Jigwang (984-107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After a monk's death, a stupa, which contains his remains, and a stele were erected in his honor.

Born in Wonju, Jigwang became a monk at Beopcheonsa Temple in 991 and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for monks in 1004. He served as an abbot for several temples and was invited by King Munjong (r. 1046-1083) to give lectures in the royal court. In 1054, he was appointed as the abbot of Hyeonhwasa, a temple in Goryeo’s capital, Gaeseong (in today’s North Korea), and oversaw a large-scale expansion of the temple with the support of the royal court. He was promoted to a royal preceptor in 1056 and a state preceptor, which was the highest position of monks, in 1058. In 1067, he retired and returned to Beopcheonsa Temple where he died in 1070.

His stele was erected in 1085.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records his life in detail, from birth to death, and the inscription on the back lists the names of his nearly 1,400 followers.

The tortoise-shaped pedestal, crown-shaped capstone, and stele body are exquisitely carved with diverse patterns such as lotus flowers, clouds, and dragons, showing the excellence of styles and techniques of that period. The stele is 4.55 m in height.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지광국사(984-107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이러한 탑비는 스님의 사후에 사리나 유골을 모신 승탑과 함께 조성된다.

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991년 원주 법천사에 출가하였고, 1004년 승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사찰의 주지를 거쳤으며, 문종(재위 1046-1083)이 즉위한 후에는 왕궁에 초빙되어 불법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1054년 고려의 수도 개성에 있는 현화사의 주지로 임명되었으며, 왕실의 지원을 받아 절을 크게 중수하였다. 1056년에는 왕사로 책봉되었고, 1058년에는 승려로서 가장 높은 지위인 국사에 올랐다. 1067년 법천사로 돌아갔으며, 1070년에 입적하였다.

지광국사의 탑비는 1085년에 세워졌다. 앞면의 비문은 지광국사의 출생부터 입적까지의 생애를 자세하게 기록했고, 뒷면에는 국사의 문도를 열거했는데 그 수가 1400여 명에 달한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왕관 모양의 머릿돌, 그리고 비신의 옆면에 새겨진 연꽃, 구름, 용 등의 정교한 문양은 당시 조각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탑비의 전체 높이는 4.55m이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