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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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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낙화암
Nakhwaam Rocks, Ulsan
대표명칭 울산 낙화암
영문명칭 Nakhwaam Rocks, Ulsan
한자 蔚山 落花岩
주소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905
지정번호 향토문화유산 제6호



해설문

국문

낙화암은 원래 미포만 백사장 서편 해송림이 우거진 곳에서 바위석대가 우뚝 솟아 동해를 품은 듯한 기암절경으로 옛부터 명승지로 알려져 시인묵객의 왕래가 많았다.

여기에 옮겨놓은 이 바위들은 낙화암의 쌍바위와 한시가 새겨진 각석 중 하나이다.

옛날 낙화암의 전설에는 고을 수령이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관기들을 데리고 명승지를 찾아 유락을 일삼으니 지방민들의 원성은 높아져 갔다. 이에 어린기생 하나가 고을수령의 가렴주구에 맞서 경종을 울리고자 붉은 치마를 뒤집어쓴 채 바다에 뛰어들어 수중고혼이 되었다.

며칠 후 어린기생의 붉은 치마폭이 파도에 실려 떠돌다가 미포 앞바다 바위섬에 걸리니 이 바위를 홍상도(紅裳島)라 불렀고, 녹라채(綠羅彩)의 소매(袖)자락이 파도에 밀려나온 포구를 녹수금(綠袖襟)이라 불렸다는 지명유래가 구전해온다.

현대조선소의 건설 당시 낙화암도 헐려서 매몰되었는데 한시가 새겨진 낙화암의 쌍바위는 한국프랜지 회장댁 뒤뜰에 옮겨지고, 또 한 바위는 현대영빈관 아래 대나무숲 속에 방기된 것을 2007년에 발견 및 확인하고 본래의 터 가까운 곳에 옮겨놓았다가 함께 대왕암공원으로 옮겨왔다. 낙화암에는 여러 편의 한시가 바위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근처에 살던 故 이만우 선생의 필사본에 전하는 낙화암의 대표적인 시 한수를 옮겨본다.

花落昔何年 꽃은 옛날 어느 해에 졌다가
東風吹又發 봄바람이 불면 다시 피어나는가?
岩春不見人 봄은 와도 그 사람 보이지 않고
空佇滄溟月 푸른 하늘 달빛만 덧없이 서성거리네.

영문

Nakhwaam Rocks, Ulsan

영문 해설 내용

낙화암은 원래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한가운데 솟아 있던 바위이다.

그러나 이 바위는 1973년 현대중공업의 조선소가 미포만에 들어서면서 파괴되었다. 당시 바위의 가치를 알아본 한국프랜지 故 김영주 회장이 왼쪽의 쌍바위를 자신의 사저에 옮겨 보관하였다. 오른쪽의 바위는 현대중공업 내에 보존되어 있었다. 이후 낙화암을 주민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장소로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마침내 2017년 현재의 위치인 대왕암공원으로 옮겼다.

낙화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울산 지역의 수령이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기생들을 데리고 명승지를 찾아가 놀기를 일삼았다. 이에 어린 기생 하나가 경종을 울리고자, 이 바위에서 붉은 치마를 뒤집어쓴 채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 후 이 바위는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뜻으로 낙화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낙화암이 있던 곳은 예로부터 절경으로 알려져 시인묵객의 왕래가 많았으며, 여러 편의 한시가 바위 벽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비록 바위는 파손되었지만, 바위가 헐리기 전에 인근에 살던 한 주민이 필사해놓은 시들이 전해지고 있다. 아래의 시는 그중 하나이다.

꽃은 옛날 어느 해에 졌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피어나는가?
봄은 와도 그 사람 보이지 않고
푸른 하늘 달빛만 덧없이 서성거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