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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 정경세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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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 정경세 신도비
우복 정경세 신도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우복 정경세 신도비
한자 愚伏 鄭經世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27-3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1호
지정일 2000년 12월 4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우복 정경세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우복 정경세 신도비는 조선 중기에 활약한 선비 정경세의 학문적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영조 34년(1758)에 그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이다. 정경세는 퇴계 이황과 서애 유성룡의 학문적 계보를 이어받아 여러 벼슬을 지냈다. 정경세의 증손자가 경상감사 이명준으로부터 기증받은 돌에 글을 새기고 미처 세우지 못하였는데 4대손이 비석 뒷면에 글을 지은 뒤 6대손이 마침내 건립했다. 비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가진 거북 모양의 받침돌, 비의 몸체, 용 모양을 새겨 장식한 비의 머릿돌로 구성되어 있다. 비석의 규모가 크고, 해서체의 글이 잘 남아 있어 신도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 후기의 유명한 학자 정경세(1563-1633)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정경세는 상주 출신으로, 류성룡의 수제자였으며 예학에 밝았다. 임진왜란 때에 상주에서 의병을 모아 싸웠고, 전쟁 후 존애원을 세우는 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비는 1758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조경(1586-1609)이 지었고 이동표(1644-1700)가 썼다. 왼쪽 면의 글은 정경세의 현손 정주원이 지은 것이며, 정경세의 6세손이자 이 비석을 세운 정종로가 썼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용 모양으로 장식한 머릿돌로 구성되어 있다.

비석은 현재 비각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비석 오른쪽 방향에 정경세와 부인의 합장묘가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