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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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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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와룡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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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臥龍庵 |
주소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135번지 |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18호 |
지정일 | 1984년 4월 1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와룡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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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와룡암은 긍구당 김중정이 병자호란 때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피해 숨어서 살던 중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조선 효종 때인 1650년에 건축한 암자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본래는 주자천 건너편 암반 위에 있었는데 물 때문에 왕래가 불편하자 조선 순조 때인 182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김중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36년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냈다. 병자호란 당시 친명파의 한 사람으로, 병자호란 이후 할아버지 김충립과 함께 진안 용담의 주천으로 이주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와룡암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중정이 1650년에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암자이다. / 서당이다.
김중정은 서울 출신으로, 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화의가 이루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1637년에 진안으로 이주하였다.
원래 건물은 주자천 건너편 암반 위에 있었다. 물 때문에 왕래가 불편하여 182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참고
- “김중정”, 디지털진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