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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죽림리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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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죽림리 향나무
예천 죽림리 향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예천 죽림리 향나무
한자 醴泉 竹林里 향나무
주소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2번지
지정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제110호
지정일 1995년 6월 30일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수량/면적 510㎡
웹사이트 예천 죽림리 향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죽림리 향나무는 예천 권씨 초간공파 종택(국가민속문화재) 및 예천 권씨 초간종택 별당(보물) 입구 앞쪽 연못가에 있는 노거수*로, 일명 울향(鬱香)나무라고 불린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0m, 줄기 둘레가 0.6m이고, 수령은 300여 년으로 추정한다.

전설에 따르면 죽림리 대수마을의 예천 권씨 입향조*인 권오상(權五常)이 무오사화* 때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울릉도 향나무를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지금의 죽림리 향나무는 권오상이 처음에 심었던 울릉도 향나무의 후손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대수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이 나무는 오늘날까지 예천 권씨 후손들과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 노거수(老巨樹): 나이가 많고 매우 큰 나무
  • 입향조(入鄕祖):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선조
  • 무오사화(戊午史禍): 조선 연산군 4년(1498) 김일손 등 사림이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 세력에게 화를 입은 사건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이다. 4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 맺는다. 향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가 향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향이 불길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제사를 모시는 곳에 주로 이 나무를 심었다. 목재는 가구를 비롯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쓰이고, 줄기와 잎은 약재로 쓰인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10m이다.

이 나무는 ‘울향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예천 권씨 죽림리 대수마을 입향조인 권오상이 1498년 사화로 인해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가 풀려날 때 울릉도에서 난 향나무를 구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의 추정 수령을 감안할 때, 지금의 나무는 권오상이 처음 심은 나무에서 새롭게 싹이 움터 자란 것으로 볼 수 있다.

  • 나무가 있는 연못가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보물 제457호)가 있다.

참고자료

  •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예천인 권오상과 죽림리 초간종택의 울릉도 향나무, 매일신문, 2012.6.7. http://news.imaeil.com/NewestAll/2012060714480823982 ->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하다가 은퇴 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희식 해설사의 설명은 권오복의 연좌(連坐)로 막내인 권오상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는데 그곳 강진의 뱃사람이 울릉도 갔다 오는 길에 향나무를 가져와 그것을 얻어 왔거나, 유배가 풀리자 강진에서 출발하는 울릉도 가는 배를 타고 울릉도에 가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며 당초 심은 곳도 연못가가 아니라, 샘 옆이라고 했다. 의문이 다소 해소되었다. 현장에 나와 있던 마을의 방계 후손 한 분도 역시 같은 증언을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