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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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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
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
한자 醴泉 龍門寺 重修龍門寺記碑
주소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사길 285-30 (용문면)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0호
지정일 201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중수용문사기비는 고려 명종 15년(1185) 용문사의 중수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이 비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하였는데, 이지명(李知命)이 고려 명종 14년(1184)에 왕명을 받아 기문을 짓고, 연의(淵懿)가 이듬해 글씨를 쓰고, 입선 해석(入選 解錫)이 글을 새겼다. 지붕돌 없이 몸돌만 있는 형태로, 크기는 높이 195㎝, 너비 93㎝, 두께 10㎝이다.

비문에는 용문산의 수려한 경관, 신라 두운선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한 일, 태조 왕건이 두운선사를 찾아와 30칸 건물을 지어주고 해마다 쌀 150석을 주어 후원한 일, 고려 의종과 명종 대에 걸쳐 중수를 진행한 일, 황태자의 태를 사찰 근처 봉우리에 묻은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1173년에 국난 극복을 위해 법회를 열고 윤장대 2좌와 전각을 마련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문 좌우에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가 화려하게 음각되어 있어 예술미가 뛰어나다. 또한 비 뒷면에 기록된 내용은 선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 단청 문양 중 최고로 손꼽히는 것으로 일반 사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무늬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고려 시대인 1185년 용문사의 중수를 기념하여 세워졌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하였는데, 기문은 1184년에 이지명이 명종의 명을 받아 지었고, 이듬해 연의가 글씨를 쓰고, 입선 해석入選 解錫이 글을 새겼다. 지붕돌 없이 몸돌만 있는 형태로, 크기는 높이 195㎝, 너비 93㎝, 두께 10㎝이다.

비문에는 용문산의 수려한 경관, 신라 두운선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한 일, 태조 왕건이 두운선사를 찾아와 30칸 건물을 지어주고 해마다 쌀 150석을 주어 후원한 일, 의종과 명종 대에 걸쳐 중수를 진행한 일, 황태자의 태를 사찰 근처 봉우리에 묻은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1173년에 국난 극복을 위해 법회를 열고 윤장대 2좌와 전각을 마련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문 좌우에 단청 문양 중 최고로 손꼽히는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가 화려하게 음각되어 있는데, 일반 사찰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비 뒷면에 기록된 내용은 선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