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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상금곡리 사괴당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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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상금곡리 사괴당고택
예천 상금곡리 사괴당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예천 상금곡리 사괴당고택
한자 醴泉 上金谷里 四傀堂 古宅
주소 경상북도 예천군 반서울로 31 (용문면)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79호
지정일 2013년 4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예천 상금곡리사괴당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괴당 고택은 원주 변씨와 함양 박씨가 모여 사는 상금곡리에 있는 가옥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원주 변씨 첨추공파의 입향조인 귀계 변희리(歸溪 邊希李)의 증손인 사괴당 변응녕(邊應寧,1518~1586)이 이 곳으로 옮겨 터를 잡았다고 한다.

고택 구조는 토석 담장을 두른 북쪽에 ‘ㄷ’자형 안채가, 앞쪽으로는 ‘一’자형 문간채가 있다. 원래는 마당이 있는 곳에 ‘ㄴ’자형 사랑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었다. 마당 동쪽의 담장 경계에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초가로 된 중층 건물인 대문채가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고,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초가지붕 건물이다.

이 고택은 벽장을 둔 공간의 구성이 뛰어나며, 나무를 얽고 창과 문을 만든 기법에서 세련미가 돋보인다. 또한 세대별 공간의 구분이 명확하여 조선 후기 주택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원주 변씨 금당실 입향조인 변응녕(1518-1586, 호 사괴당)의 후손들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지금의 집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택이 위치한 자리는 변응녕이 처가가 있던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터를 잡았던 곳이라고 전한다. 변응녕은 집 앞에 큰 연못을 만들고, 그 주변에 네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고, ‘사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집은 ‘ㄷ’자형의 안채와 문간채, 2층으로 된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채만 기와지붕을 올렸다. 안마당 자리에 사랑채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고 하며, 마당의 동쪽 경계에 자리한 대문채는 일제 강점기 때 새롭게 지은 것이라고 한다.

  • 사랑채 철거 시점 확인 불가.
  • 안채는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 날개에는 부엌과 고방을, 반대편에는 온돌방을 두었으며, 방 앞에는 통행을 위한 쪽마루를 달았다.
  • 집 동편에 있는 넓은 터는 이유인의 대저택이 있었다고 하는 자리이다.
  • 현재 면사무소 자리가 연못 터로 전하는데, 면사무소 정문 앞에 우뚝 선 거대한 느티나무가 당시 심은 네 그루 중 하나라고 한다. 주민들이 대를 이어 정월 보름에 제를 올리고 있다.
  • 문화재 명칭 관련 ; 엑셀 파일에는 상금곡동으로 되어 있음.

참고자료

  • ‘99칸 한옥’ 지은 사대부 몰락의 비밀, 한겨례, 2012.6.27. https://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539839.html -> 사괴당 고택은 마을 입향조인 변희리의 증손 사괴당 변웅녕이 지었다는 집이다. 그는 당시 집 앞에 커다란 연못을 만들고 못가에 네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사괴당(四槐堂)이 여기서 유래했다. 현재 면사무소 자리가 연못 터로 전하는데, 면사무소 정문 앞에 우뚝 선 거대한 느티나무가 당시 심은 네 그루 중 하나라고 한다. 주민들이 대를 이어 정월 보름에 제를 올려온 나무다. 사괴당 고택은 사랑채가 헐려 안마당이 널찍한데, 2층의 초가인 문간채가 특이하다. 일제강점기 새로 지은 건물이다. / 사괴당 옆에 담장만 남은 널찍한 빈 집터가 있다. 이곳이 구한말 법무대신을 지낸 이유인이 지은 99칸 한옥이 있던 자리다. 여기에 흥미롭고도 씁쓸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사괴당 안채 옆에는 커다란 사각형 돌판이 놓여 있다. 해설사 박씨는 “이유인의 집터에 있던 것으로 태형을 집행하던 탯돌”이라고 말했다.
  • 너른 마당이 인상적인 고택, 넉넉한 인심은 덤인 곳 – 예천 금당실마을 사괴당 고택, tour of wind,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sunny38/11775704 2층 대문채, 안채, 문간채 각각 사진으로 확인 가능함
  • 벼락부자의 99칸 집, 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오마이뉴스, 2019.4.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24621 -> 사괴당고택은 용문면사무소 남쪽에 붙어있다. 원주변씨 입향조, 사괴당 변응녕(1518-1586)의 집이다. 현재 집은 18세기말~19세기초에 지은 것이다. 사랑채는 헐리고 'ㄷ' 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 집안이 썰렁해 뵌다. 집 앞에 커다란 연못을 만들어 느티나무 네그루를 심었다 하는데 세 그루는 죽고 방앗간 앞 한그루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