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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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유물
Buddhist Painting (The Vulture Peak Assembly) and Excavated Relics of Bongnimsa Temple, Yeongcheon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 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유물
영문명칭 Buddhist Painting (The Vulture Peak Assembly) and Excavated Relics of Bongnimsa Temple, Yeongcheon
한자 永川 鳳林寺 靈山會上圖 및 腹藏遺物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149-368, 봉림사 (자천리)
국가유산 종목 보물 제1612호
지정(등록)일 2009년 2월 23일
분류 유물/불교회화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불화 1점, 복장유물 5종 6점
웹사이트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 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는 의균의 제자인 쾌민과 체준 등이 조선 경종 4년(1724)에 제작한 것으로 가로 317cm 세로 339cm의 화폭에 그린 그림이다.

이 불화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보살과 제자, 호법신 등을 그린 것이다. 석가모니불의 키형 광배*와 뾰족한 육계**, 입체적인 인물 표현, 사천왕의 중후한 모습 등은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 삼불회도와 비슷한 특징이 있으나 빨간색과 초록색의 대비, 보살과 제자 등이 석가모니불을 촘촘하게 둘러싼 모습 등이 다르다. 이런 특징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후의 불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는 학술적 의미가 큰 작품이다.

복장 유물로는 화기***와 복장 주머니가 전해진다. 복장 주머니 안에 발원문, 후령통**** 등이 담겨 있었는데 이것들은 봉림사 영산회상도를 제작하던 당시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키형 광배: 곡물을 말리는 농기구의 하나인 키(箕)의 형태로 생긴 광배이며, 일명 파기형 광배라고 부르기도 함.
  •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 화기(畫器): 그림을 그린 사기(沙器).
  • 후령통(後鈴筒): 유물 가운데 복장(腹藏)을 넣는 통.

영문

Buddhist Painting (The Vulture Peak Assembly) and Excavated Relics of Bongnimsa Temple, Yeongcheon

This Buddhist painting created in 1724 by the monk artisans Kwaemin and Chejun depicts the scene of Sakyamuni Buddha’s lecture at Vulture Peak. It measures 3.39 m in height and 3.17 m in width.

The composition consists of Sakyamuni in the center seated on a pedestal surrounded by several dozen figures, including bodhisattvas, disciples, and guardian deities. The shape of the halos behind Sakyamuni, the pointedness of the protuberance at the top of his head, the three-dimensional depiction of the figures, and the imposing facial expressions of the Four Guardian Kings follow the tradition of earlier works by the monk artisan Uigyun, who was Kwaemin and Chejun’s teacher. At the same time, it is also an early example of the strong red-green contrast and densely arranged composition that came to feature prominently in later Buddhist paintings.

A record of the painting’s creation process and a Dharani bag have also been passed down. Kept in the Dharani bag were a written vow, a list of the monks of the temple, a list of the painting’s patrons, and a container of votive objects. These relics provide valuable insight into the circumstances surrounding the painting’s creation.

영문 해설 내용

이 불화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나타낸 것으로, 승려 화가인 쾌민과 체준 등이 1724년에 제작하였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3.17m, 세로 3.39m이다.

화면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이 대좌 위에 앉아 있고, 보살, 제자, 호법신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광배 형태와 뾰족한 육계, 입체적인 인물 표현, 사천왕의 중후한 모습 등은 쾌민과 체준의 스승인 의균이 제작한 불화의 양식과 비슷하다. 그러나 빨간색과 초록색의 대비, 보살과 제자 등이 석가모니불을 촘촘하게 둘러싼 모습 등은 이 작품 이후의 불화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또한 이 영산회상도는 제작 내력을 기록한 화기와 복장 주머니가 함께 남아 있다. 복장 주머니에는 발원문, 사찰의 승려 명단, 시주자 명단, 후령통이 담겨 있었다. 이 유물들은 이 영산회상도를 제작하던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