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평은리 양지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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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는 제사를 지내려고 무덤 또는 신주나 영정을 모시는 사묘 옆에 지은 건물로 재실이라고도 한다.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숙식과 제사 음식 장만, 제사를 마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 타향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해 지내는 제사인 망제와 문중 회의가 열리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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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암은 원래 김정몽(金正蒙)이 지어 아들 김언광(金彦光)에게 물려준 살림집이었다. 김언광은 딸만 셋이 있어 외손에게 제사를 모실 것을 유언하고 조선 명종 1년(1546)에 재산을 물려주었는데, 첫째사위는 의성김씨 김린(金麟), 둘째사위는 청도김씨 김봉상(金鳳祥), 셋째사위는 고령박씨 박대령(朴大齡)이었다. 이때부터 양지암은 재사*로 이용되었는데, 인조 16년(1638)에 재사가 무너지고 사당만 남게 되자 숙종 13년(1687)에 김린의 5대손인 김만휴(金萬烋)와 박대령의 후손인 박정량(朴廷亮)이 다시 고쳐지었다. 현재도 세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양지암은 조선 명종 1년(1546) 김언광(金彦光)의 묘소 관리를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김언광은 딸만 셋이 있어 외손에게 제사를 모실 것을 유언하였는데, 첫째사위는 의성김씨 김린(金麟), 둘째사위는 청도김씨 김봉상(金鳳祥), 셋째사위는 고령박씨 박대령(朴大齡)이었다. 인조 16년(1638)에 재사가 무너지고 사당만 남게 되자 숙종 13년(1687)에 다시 고쳐지었다. 현재도 세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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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의 배치는 양지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익사(翼舍)가 자리하고 맞은편에는 2층 누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재사의 배치는 양지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익사(翼舍)가 자리하고 맞은편에는 2층 누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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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 : 제사를 지내려고 무덤 또는 신주나 영정을 모시는 사묘 옆에 지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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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3일 (화) 20:44 판

영주 평은리 양지암
Yangjiam Ritual House in Pyeongeun-ri, Yeongju
영주 평은리 양지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주 평은리 양지암
영문명칭 Yangjiam Ritual House in Pyeongeun-ri, Yeongju
한자 榮州 平恩里 養芝菴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평은리 1318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2호
지정일 2012년 10월 2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4동
웹사이트 영주 평은리 양지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양지암은 원래 김정몽(金正蒙)이 지어 아들 김언광(金彦光)에게 물려준 살림집이었다. 김언광은 딸만 셋이 있어 외손에게 제사를 모실 것을 유언하고 조선 명종 1년(1546)에 재산을 물려주었는데, 첫째사위는 의성김씨 김린(金麟), 둘째사위는 청도김씨 김봉상(金鳳祥), 셋째사위는 고령박씨 박대령(朴大齡)이었다. 이때부터 양지암은 재사*로 이용되었는데, 인조 16년(1638)에 재사가 무너지고 사당만 남게 되자 숙종 13년(1687)에 김린의 5대손인 김만휴(金萬烋)와 박대령의 후손인 박정량(朴廷亮)이 다시 고쳐지었다. 현재도 세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재사의 배치는 양지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익사(翼舍)가 자리하고 맞은편에는 2층 누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 재사 : 제사를 지내려고 무덤 또는 신주나 영정을 모시는 사묘 옆에 지은 건물

영문

Yangjiam Ritual House in Pyeongeun-ri, Yeongju

This ritual house was built in 1546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 of Kim Eon-gwang. The building collapsed in 1638 and was repaired in 1687.

According to Confucian tradition in Korea, ancestral rituals are performed by the male descendants of the family lineage. However, Kim Eon-gwang, who only had three daughters, asked in his will for his ancestral ritual to be performed by the descendants of his sons-in-law, namely Kim Rin of the Uiseong Kim Clan, Kim Bong-sang of the Cheongdo Kim Clan, and Bak Dae-ryeong of the Goryeong Bak Clan. The descendants of these three men have shared responsibility for the ancestral rituals to Kim Eon-gwang up until this day.

The complex consists of Suudang Pavilion in the front, Yangjiam Ritual House in the rear, and two auxiliary buildings to the left and right. The four buildings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The ritual house building features a main room in the middle, a kitchen on the left,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on the right side.

영문 해설 내용

양지암은 김언광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1546년에 세운 재사이다. 1638년에 무너진 뒤 1687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한국에서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남자 후손들이 지내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김언광은 딸만 셋이 있었기 때문에, 외손에게 제사를 모실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첫째 사위는 의성김씨 김린, 둘째 사위는 청도김씨 김봉상, 셋째 사위는 고령박씨 박대령으로, 지금도 이 세 문중에서 재사를 공동으로 관리한다.

재사는 앞에서부터 누각인 수우당, 좌우 익사, 정침인 양지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침은 중앙의 큰방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다.

참고자료

  • 영주 문화재 여행, 조선 명종 부장공 김언광의 재사 양지암, 힐링중심 행복영주 영주시청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yeongju_city/222082345159
  • 영주 평은리 양지암, 디지털영주문화대전 http://yeongju.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993 -> 영주 평은리 양지암은 전면의 경사진 대지 위에 2층 누각 건물인 수우당(守愚堂)이 있고, 그 뒤로 양지암과 대문간, 유사실이 튼 ‘ㄷ’자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영주 평은리 양지암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중앙에 큰방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 오른쪽에 온돌방·도장방이 앞뒤로 높여 있다. 큰방은 2칸으로 앞뒤에 툇간을 두었는데, 앞쪽에는 툇마루를 깔고 뒤쪽은 통로 1칸에 제수방 1칸을 두었다. 부엌은 안마당으로 개방되어 있고, 도장방은 우물마루 바닥에 큰방 쪽으로 문을 내어 사용하고 있다. 지붕은 안방 부분은 맞배지붕이고, 양쪽은 가작 지붕을 설치한 공자형(工字形) 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누각인 수우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누하층은 통로와 창고로 사용하고, 누상층은 우물마루를 깐 후 안마당 쪽을 제외한 삼면에 벽체를 두었다. 쌍여닫이 띳장널문을 달아 놓았는데, 어칸에는 영쌍창을 설치한 흔적이 남아있고, 각 칸의 창호 폭은 조금씩 틀리다. 유사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문을 내고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 영주 평은리 양지암, 영주 문화관광 https://www.yeongju.go.kr/open_content/tour/page.do?srchMan=&pageNo=1&tree_uid=66&mnu_uid=1361&tsite_uid=199&step=2 -> 이 건물은 조선 명종 1년(1546) 부장공 김언광의 묘소수호를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김언광은 딸만 셋이 있어(첫째 사위 의성김씨 김인, 둘째 사위 청도김씨 김봉상, 셋째 사위 고령박씨 박대령) 유명에 의하여 외손 봉사하게 되었다. 그 후 인조 16년(1638)에 재실은 무너지고 사당만 남게 되자 김인의 5대손인 만휴와 박대령의 후손인 정량이 숙종 13년(1687)에 중건하였다. 건물은 양지암마을 좌측편 야산자락에 남향하고 있다. 전면에는 경사진 대지에 중층 루각건물인 수우당을 배치하고, 그 뒤편 한단 높은 축대위에 양지암과 대문간, 유사실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